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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경계에 선 히어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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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9-30T13:19:20+00:00
author: SYSOP
summary: 현실에서 슈퍼히어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마블과 DC의 히어로 34명에게 점수를 매겨 두 세계를 가르는 선을 찾아보며 PCA와 LDA, 서포트 벡터 머신을 만나고, 파산 예측부터 얼굴 인식까지 현실에서 선을 긋는 기계들을 따라간다. 오늘의 한 페이지 세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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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에 선 히어로들

![경계에 선 히어로들. 마블(빨강)과 DC(파랑) 히어로를 점으로 찍고 그 사이에 가장 넓은 길을 낸 그림. 길 가장자리에 걸친 자타나와 토르, 한 자리에 겹친 퀵실버와 울버린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uploads/b4ae4c3fb97f1a14.webp =720)

오늘도 아이디어 노트를 아무 데나 펼쳤다. 이번에 나온 건 문장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 현실 속에서 슈퍼히어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흔히 떠오르는 답은 소방관이나 응급실 의사, 아이를 키우는 부모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슈퍼히어로가 뭔지부터 정해야 한다. 슈퍼히어로에게는 보통 비범한 능력이 있다. 하늘을 날거나, 무엇이든 들어 올리거나, 남들이 못 보는 걸 본다.

우리가 슈퍼히어로라고 하면 대개 영화로 만난 두 세계를 떠올린다. 마블과 DC다.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한쪽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다른 쪽에 선다. 이 둘은 뭐가 다를까. 팬이라면 금방 느낌으로 답할 것이다. 그런데 그 느낌을 기계에게 가르치려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은 마블과 DC 사이에 선을 하나 그어 보려 한다. 선을 긋다 보면 경계에 걸린 히어로들이 드러나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그쪽이다.

## 능력으로는 안 갈린다

먼저 히어로 34명을 골랐다. 마블 17명, DC 17명이다. 그리고 각자에게 다섯 가지 점수를 0에서 10점 사이로 매겼다. 힘의 크기, 선함, 능력의 쓸모(일상에서 얼마나 쓸 데가 있나), 일상의 고민(돈, 병, 가족, 중독 같은 걱정거리가 얼마나 많나), 신화성(신이나 외계인, 전설에 가까운 정도)이다. 여기에 사실 자료인 첫 등장 연도와, 주 무대가 실제로 있는 도시인지 가상의 도시인지를 점수로 옮긴 무대의 현실감을 더했다. 미리 밝혀 둔다. 첫 등장 연도를 뺀 점수는 모두 내가 매긴 것이다. 슈퍼맨의 힘은 10점, 호크아이는 2점. 반박하고 싶은 팬이 많을 줄 안다.

먼저 영화 포스터가 자랑하는 것들, 그러니까 힘과 선함부터 찍어 봤다.

![힘의 크기와 선함, 능력의 쓸모와 신화성으로 34명을 찍은 두 산점도. 빨간 마블 점과 파란 DC 점이 뒤섞여 있고, 직선 하나로 가를 수 있는 최선은 두 그림 모두 21/34(62%)다](/uploads/12d0d2e521f60bb0.webp =720)

빨강과 파랑이 뒤섞여 있다. 블랙 팬서 바로 옆에 사이보그가 있고, 데드풀 근처에 데스스트로크가 있다. 직선을 어떻게 그어도 34명 가운데 21명(62%)밖에 못 맞힌다. 동전을 던져도 절반은 맞히니, 능력만 봐서는 마블과 DC를 가를 수 없다는 뜻이다.

섞일 만도 하다. 두 회사는 80년 넘게 서로를 곁눈질했다.

| 마블 | DC | 닮은 점 |
|---|---|---|
| 네이머 (1939) | 아쿠아맨 (1941) | 바닷속 왕국의 왕 |
| 퀵실버 (1964) | 플래시 (1956, 배리 앨런) | 누구보다 빨리 달린다 |
| 호크아이 (1964) | 그린 애로우 (1941) | 초능력 없이 활 하나로 싸운다 |
| 맨싱 (1971년 5월) | 스웜프 싱 (1971년 7월) | 늪에서 태어난 식물 괴물 |
| 데드풀 (1991) | 데스스트로크 (1980) | 가면 쓴 용병. 본명도 웨이드 윌슨과 슬레이드 윌슨 |

데드풀의 본명은 작가가 데스스트로크의 본명 슬레이드 윌슨을 비틀어 붙인 농담이다. 맨싱과 스웜프 싱은 두 달 간격으로 나왔는데, 두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당시 한집에 살던 룸메이트였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름을 두고 싸운 경우도 있다. 1940년 포셋이라는 출판사가 '캡틴 마블'이라는 히어로를 냈다. 소년이 "샤잠!"을 외치면 어른 히어로로 변신하는 이야기로, 1940년대에는 슈퍼맨보다 많이 팔렸다. 슈퍼맨을 가진 DC가 베꼈다며 소송을 걸었고, 포셋은 1953년 이 히어로의 만화를 접었다. 그 사이 마블은 1967년 자기 캡틴 마블을 내고 이름을 상표로 챙겼다. 나중에 DC가 이 캐릭터를 사들였지만 이름은 쓸 수 없었다. 결국 이 히어로는 자기가 외치는 주문, 샤잠이 됐다. 몸은 DC에 있고 옛 이름은 마블에 있는, 말 그대로 경계에 선 히어로다.

## 가장 넓게 퍼진 방향: PCA

특징이 일곱 개면 그림 한 장에 다 못 그린다. 이럴 때 먼저 꺼내는 도구가 주성분 분석(PCA)이다. 1901년 영국의 통계학자 칼 피어슨이 「공간의 점들에 가장 가까이 맞는 직선과 평면」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내놓았고, 1933년 미국의 해럴드 호텔링이 '주성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왼쪽부터 칼 피어슨(1912), 로널드 피셔(1913), 버시컬러붓꽃. 피어슨은 1901년 PCA의 첫 논문을, 피셔는 1936년 붓꽃 자료로 LDA를 내놓았다](/uploads/403ef78d6e1bd17c.jpg =720)

PCA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점들이 가장 넓게 퍼진 방향을 찾아 거기에 첫째 축을 놓는다. 그다음으로 넓게 퍼진 방향에 둘째 축을 놓는다. 일곱 개의 특징이 서로 얽혀 있으면, 축 두어 개만으로도 전체 모습의 상당 부분이 드러난다. 중요한 점은 PCA가 누가 마블이고 누가 DC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답을 보지 않고 그저 퍼짐만 본다.

34명에게 PCA를 돌려 보니 첫째 축 하나가 전체 흩어짐의 49%를 설명했다. 이 축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일상의 고민과 늦은 등장, 현실의 무대가 한쪽으로 가고, 신화성과 힘과 선함이 반대쪽으로 간다. 답을 모르는 기계가 스스로 찾아낸 가장 큰 차이는 '신에 가까운 히어로와 사람에 가까운 히어로'였다.

이 축 위에 34명을 세우고 점선 하나로 나눠 보면 26명(76%)을 맞힌다. 능력 점수로 가를 때보다 훨씬 낫다. 마블이 사람 같은 히어로를, DC가 신 같은 히어로를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틀리는 자리가 있다. 신화 속 신인 토르와 바다의 왕 네이머, 1941년에 태어난 캡틴 아메리카가 DC 쪽으로 넘어가고, 걱정 많은 콘스탄틴과 명성을 좇는 부스터 골드가 마블 쪽으로 넘어온다. PCA에게 가장 넓은 방향이 곧 두 무리를 가르는 방향은 아니다.

## 두 무리가 가장 멀어지는 방향: LDA

선형 판별 분석(LDA)은 답을 보고 축을 찾는다. 1936년 영국의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가 붓꽃 150송이의 꽃받침과 꽃잎 길이와 너비로 세 종을 가르며 보인 방법이다. 식물학자 에드거 앤더슨이 모은 이 자료는 지금도 기계학습 교과서의 첫 장에 나온다.

피셔의 생각은 이렇다. 좋은 축이란 두 무리의 평균이 서로 멀리 떨어지면서도 각 무리 안에서는 점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축이다. 평균 사이 거리를 무리 안의 흩어짐으로 나눈 값이 가장 커지는 방향을 찾으면 된다. 운동회 줄다리기로 치면, 두 팀이 가장 멀리 떨어져 서고 각 팀은 한 덩어리로 뭉치는 방향으로 운동장에 선을 긋는 셈이다.

![34명을 한 줄로 세운 두 결과. 위는 PCA 첫째 축으로 26/34를, 아래는 LDA 축으로 29/34를 맞힌다. 점선 반대편에 선 히어로에게만 이름을 달았다](/uploads/1c587d1f4499f353.webp =720)

LDA 축 위에서는 29명(85%)이 제자리에 선다. LDA가 무엇에 무게를 걸었는지 보면 더 놀랍다.

![PCA 첫째 축과 LDA 축의 무게를 특징별로 비교한 막대그래프. PCA는 고민, 신화성, 연도, 무대, 힘, 선함에 고루 무게를 싣고, LDA는 무대의 현실감 하나에 +0.87을 걸었다](/uploads/19a3a470c773d958.webp =720)

힘도 선함도 신화성도 아니었다. 마블과 DC를 가장 잘 가르는 특징은 히어로가 어디 사느냐였다. 마블 히어로는 대부분 실제 뉴욕에 산다. 스파이더맨은 퀸스, 데어데블은 헬스 키친,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산다. DC 히어로는 지도에 없는 도시에 산다. 슈퍼맨의 메트로폴리스, 배트맨의 고담, 플래시의 센트럴 시티다. 마블이 즐겨 내세우던 '당신 창밖의 세계(the world outside your window)'라는 말을 기계가 숫자로 다시 찾아낸 셈이다.

LDA가 틀린 다섯도 흥미롭다. 가상의 나라 와칸다에 사는 블랙 팬서, 바닷속 아틀란티스의 네이머는 마블인데 DC 쪽에 섰다. 디트로이트의 사이보그, 루이지애나 늪의 스웜프 싱, 런던 뒷골목의 콘스탄틴은 DC인데 마블 쪽에 섰다. 네이머와 스웜프 싱은 앞의 닮은꼴 표에도 나왔던 얼굴이다. 서로를 베낀 캐릭터들이 결국 경계에서 만난다.

## 가장 넓은 길: 서포트 벡터 머신

선을 긋는 방법은 셋째로 하나 더 있다. 두 무리를 가를 수 있는 선이 여러 개라면 어떤 선이 가장 좋을까. 1963년 소련의 블라디미르 바프닉과 알렉산드르 레르네르는 이렇게 답했다. 두 무리 사이에 길을 내되, 길의 폭이 가장 넓은 선을 고르라. 이 폭을 마진(margin)이라 하고, 마진을 가장 크게 만드는 분류기를 서포트 벡터 머신(SVM)이라 부른다.

![서포트 벡터 머신 두 장면. 왼쪽은 경계를 넘는 여섯을 뺀 28명으로 가장 넓은 길을 낸 것이고, 길 가장자리에 걸친 넷(자타나, 토르, 퀵실버, 울버린)이 선을 정한다. 오른쪽은 34명 전부에 소프트 마진을 쓴 것이고, 다섯 명이 건너편에 남고 맨싱은 선 위에 걸쳤다](/uploads/8ac7e2908277f75d.webp =720)

가로축은 무대의 현실감, 세로축은 인간미(고민 점수에서 신화성 점수를 뺀 값)다. 왼쪽 그림은 경계를 넘는 여섯을 잠시 빼고 28명만으로 가장 넓은 길을 낸 결과다. 여기서 SVM의 재미있는 성질이 드러난다. 선을 정하는 것은 길 가장자리에 걸친 점들뿐이다. 이들을 서포트 벡터라고 부른다. 이 그림에서는 자타나와 토르, 그리고 같은 점수를 받아 한 자리에 겹쳐 선 퀵실버와 울버린까지 넷이다. 슈퍼맨을 더 멀리 날려 보내도, 스파이더맨을 맨해튼 한복판으로 옮겨도 선은 꿈쩍하지 않는다. 가장 강한 히어로도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도 아닌, 경계에 선 네 명이 경계를 정한다.

현실의 자료는 이렇게 깔끔하게 갈리지 않는다. 오른쪽 그림처럼 34명을 다 넣으면 어떤 직선도 두 무리를 완전히 가르지 못한다. 1995년 코리나 코르테스와 바프닉은 여기에 '봐주기'를 더했다. 몇 명쯤은 길 안으로 들어오거나 건너편으로 넘어가도 좋다. 대신 넘어간 거리만큼 벌점을 매긴다. 벌점을 무겁게 매기면 길은 좁아지고 선은 한 명 한 명에 예민해진다. 가볍게 매기면 길이 넓어지고 선은 큰 흐름만 본다. 이 방식을 소프트 마진이라 한다. 오늘날 쓰이는 SVM은 대개 이 모양이다.

직선으로 도저히 안 되면 공간을 휘는 방법도 있다. 1992년 베른하르트 보저, 이자벨 기용, 바프닉이 '커널 트릭'을 붙였다. 평면에서는 곡선이 필요한 경계도 차원을 하나 더 얹어 보면 평평한 판 하나로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 종이 위에 뒤섞인 구슬을 공중으로 튀겨 높이 차이로 가르는 것과 비슷하다.

말로만 들으면 감이 잘 안 온다. 그래서 직접 끌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map /embed/superhero-2026.html 4:3
마블과 DC 히어로 34명을 두 축 위에 찍고, 그 사이에 서포트 벡터 머신이 가장 넓은 길을 낸다. 처음 화면은 위 왼쪽 그림과 같은 장면이다(무대의 현실감×인간미, 경계를 넘는 여섯은 흐리게 빼 둠). 위쪽 목록에서 가로·세로 축을 고를 수 있다. 힘·선함·쓸모·고민·신화성·첫 등장 연도·무대의 현실감 일곱 특징과, 인간미(고민 − 신화성), 일곱 특징 전체로 계산한 PCA 1·2축과 LDA 축이 있다. 검은 실선이 경계, 주황 띠가 마진이고 동그라미 친 점이 서포트 벡터, ✕ 표가 선 건너편에 남은 히어로다. 점을 손가락이나 마우스로 끌어 옮기면 선이 바로 다시 그어진다. 아래 ‘여섯 빼기’를 끄면 블랙 팬서, 네이머, 맨싱, 사이보그, 스웜프 싱, 콘스탄틴이 돌아온다. ‘봐주기 C’를 올리면 넘어간 히어로에게 벌점이 무거워져 길이 좁아지고, 내리면 길이 넓어진다. PCA 축과 LDA 축을 켜면 지금 보이는 두 축 평면에서 두 방법이 고른 방향이 화살표로 나온다. 점수는 필자가 임의로 매긴 것이다.
```

몇 가지를 해 보면 좋다. 먼저 동그라미 없는 히어로, 예를 들어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을 끌어서 멀리 옮겨 보자. 선은 꿈쩍하지 않는다. 반대로 동그라미 친 토르를 왼쪽으로 한 칸만 옮겨도 선이 기울며 따라온다. 다음으로 ‘여섯 빼기’를 끄면, 어떤 직선도 모두를 가르지 못하게 되고 선 건너편에 ✕가 생긴다. 이때 ‘봐주기 C’를 내리면 길이 넓어지며 동그라미 친 히어로가 우르르 늘어난다. 마지막으로 ‘힘×선함’ 버튼을 눌러 보자. 서포트 벡터가 서른 명 가까이 된다. 경계가 불분명하면 거의 모두가 선을 정하는 데 한마디씩 거드는 것이다. PCA와 LDA 화살표를 함께 켜면, 가장 넓게 퍼진 방향과 가장 잘 가르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게 눈으로 보인다.

## 현실에서 선을 긋는 기계들

마블과 DC를 가르는 건 놀이지만, 같은 수학이 매일 진지한 선을 긋고 있다.

**파산할 회사와 버틸 회사.** 1968년 뉴욕대의 에드워드 올트먼은 제조업체 66곳의 재무제표를 모았다. 절반은 파산했고 절반은 멀쩡했다. 올트먼은 피셔의 판별 분석으로 두 무리를 가장 잘 가르는 축을 찾았다. 그렇게 나온 것이 지금도 쓰이는 올트먼 Z-점수(흔히 알트만 Z-점수)다.

| 재무 비율 | 무게 |
|---|---|
| 운전자본 ÷ 총자산 | 1.2 |
| 이익잉여금 ÷ 총자산 | 1.4 |
| 영업이익 ÷ 총자산 | 3.3 |
| 자기자본 시가 ÷ 총부채 | 0.6 |
| 매출액 ÷ 총자산 | 1.0 |

다섯 비율에 무게를 곱해 더한 값이 2.99를 넘으면 안전, 1.81 아래면 위험이다. 둘 사이는 회색 지대라고 부른다. 올트먼이 그어 놓은 경계에도 SVM처럼 폭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점수는 파산 1년 전 회사의 대부분을 알아맞혔다.

**유전자로 그린 유럽 지도.** 2008년 존 노벰버 연구팀은 유럽인 1,387명의 유전체에서 약 20만 곳의 자리를 골라 PCA를 돌렸다. 누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 축으로 사람들을 찍자 점들이 유럽 지도 모양으로 늘어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장화 모양 자리에,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위쪽에 모였다. 답을 모르는 PCA가 가장 넓게 퍼진 방향을 찾았더니, 그게 남북과 동서였다. 오늘 히어로들에게서 PCA가 신과 사람을 찾아낸 것과 같은 일이다.

**얼굴을 알아보는 두 방법.** 1991년 매슈 터크와 알렉스 펜틀랜드는 얼굴 사진에 PCA를 써서 '아이겐페이스'를 만들었다. 수많은 얼굴 사진이 가장 넓게 퍼진 방향 몇 개로 얼굴을 요약하고, 그 요약으로 누구인지 맞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같은 사람도 조명이 바뀌면 사진이 크게 달라진다. 가장 넓게 퍼진 방향이 사람이 아니라 조명을 따라가 버렸다. 1997년 피터 벨허미어 연구팀은 LDA를 쓴 '피셔페이스'로 답했다. 사람 사이의 차이는 키우고 한 사람의 여러 사진 사이 차이는 줄이는 방향을 찾자, 조명과 표정이 바뀌어도 훨씬 덜 틀렸다. 퍼짐을 보는 PCA와 가르기를 보는 LDA의 차이가 얼굴 인식에서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우편번호와 스팸 메일.** 코르테스와 바프닉이 1995년 소프트 마진 SVM을 발표할 때 시험대로 삼은 것이 미국 우편국의 손글씨 숫자였다. 편지 봉투에 사람들이 제각각 휘갈겨 쓴 우편번호를 기계가 읽어야 했다. 몇 년 뒤에는 같은 방법이 스팸 메일 거르기에도 쓰였다. 받은 편지함에서 광고와 편지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이다. 두 경우 모두 선을 정한 것은 알아보기 쉬운 숫자나 뻔한 광고가 아니었다. 1인지 7인지 애매한 숫자, 광고인지 편지인지 헷갈리는 메일, 그러니까 경계에 선 것들이었다.

## 선을 긋는 사람들

돌아보면 히어로와 분류기는 같은 시대에 자랐다.

![히어로와 분류기의 연표. 위에는 1938년 슈퍼맨부터 1991년 데드풀까지 만화 속 히어로가, 아래에는 1901년 피어슨의 PCA부터 1936년 피셔의 LDA, 1963년 바프닉의 일반화된 초상, 1995년 소프트 마진 SVM까지 선을 긋는 수학이 놓여 있다](/uploads/6ab0d996eb46e3a8.webp =720)

피셔가 붓꽃을 가르던 1936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는 제리 시겔과 조 슈스터라는 두 청년이 몇 년째 퇴짜를 맞던 히어로 하나를 들고 출판사를 돌고 있었다. 1938년 이 히어로가 슈퍼맨이 되어 나왔을 때, 두 사람은 권리를 130달러에 넘겼다. 바프닉이 모스크바에서 가장 넓은 길을 찾던 1963년에는 뉴욕에서는 스탠 리와 잭 커비가 엑스맨을 내놓았고, 같은 해 아이언맨도 나왔다. 한쪽은 세상에 없던 사람을 그렸고, 한쪽은 세상에 없던 선을 그렸다.

물론 이들이 흠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피어슨과 피셔는 우생학에 깊이 몸담았다. 피셔의 붓꽃 논문이 실린 곳도 『우생학 연보』였다. 시겔과 슈스터는 평생 자기가 만든 히어로의 몫을 두고 싸웠다. 히어로에게도 흠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준 게 마블이었으니, 이 또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노트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현실 속에서 슈퍼히어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의 답은 이렇다.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하늘을 나는 사람을 종이 위에 처음 그린 청년들, 뒤섞인 점들 사이에서 아무도 못 본 선을 찾아낸 수학자들. 그들이 가진 능력은 힘이 아니라 상상력이었다. 그리고 SVM이 알려 주듯 선을 정하는 건 늘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예술과 과학 사이, 두 세계가 맞닿는 가장자리에 서서 아무도 긋지 않은 선을 긋는 사람들. 내 생각에 그들이 현실의 히어로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노트를 아무 데나 펼쳐, 거기 적힌 한 줄에 그날의 생각을 얹는다. 다음 장에서는 또 어떤 질문이 기다릴지 모르겠다.

## 참고

- Karl Pearson, 「On lines and planes of closest fit to systems of points in space」, Philosophical Magazine(1901)
- R. A. Fisher, 「The use of multiple measurements in taxonomic problems」, Annals of Eugenics(1936)
- Corinna Cortes · Vladimir Vapnik, 「[Support-vector networks](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BF00994018)」, Machine Learning(1995)
- Edward I. Altman, 「Financial Ratios, Discriminant Analysis and the Prediction of Corporate Bankruptcy」, Journal of Finance(1968)
- John Novembre 외, 「[Genes mirror geography within Europe](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07331)」, Nature(2008)
- Peter N. Belhumeur 외, 「Eigenfaces vs. Fisherfaces: Recognition Using Class Specific Linear Projection」, IEEE TPAMI(1997)
- 사진: 칼 피어슨 · 로널드 피셔 · 버시컬러붓꽃(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 모두 퍼블릭 도메인(위키미디어 공용)
- 히어로 34명의 점수는 본문 놀이판에서 점을 가리키면 모두 볼 수 있다. 점수 여섯 개는 내가 매긴 것이고 첫 등장 연도만 사실 자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