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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마음에 안 드는 결말, 다시 써 봐도 될까
url: https://oosioo.com/p/%EB%A7%88%EC%9D%8C%EC%97%90-%EC%95%88-%EB%93%9C%EB%8A%94-%EA%B2%B0%EB%A7%90-%EB%8B%A4%EC%8B%9C-%EC%8D%A8-%EB%B4%90%EB%8F%84-%EB%90%A0%EA%B9%8C
date: 2026-10-23T12:48:30+00:00
author: SYSOP
summary: 노트에는 '최근에 보고 실망했던 영화는 무엇인가? 더 나은 결말을 구상해보자'라고 적혀 있었다. 결말을 고쳐 쓰고 싶은 마음은 오래됐다. 디킨스의 미완성 소설, 관객 투표로 범인을 정하는 뮤지컬, 1,800만 편이 넘는 팬픽이 그 증거다. AI는 이 오래된 놀이를 누구나 몇 초 만에 하게 만들었고, 뤼튼의 '크랙' 같은 서비스로 시장도 생겼다. 그런데 남의 결말을 고쳐 쓰는 일은 어디까지 괜찮을까. AI 생성물의 저작권, 팬 창작의 회색지대, AI로 되살린 고인의 목소리를 둘러싼 엇갈린 반응을 따라가며 선을 그어 봤다. 원작부터 AI가 쓴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결말을 81가지로 다시 짜 보는 놀이판도 넣었다. 오늘의 한 페이지 스물두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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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안 드는 결말, 다시 써 봐도 될까

![어두운 바탕 왼쪽에 「마음에 안 드는 결말, 다시 써 봐도 될까」라는 제목이 있다. 아래에는 필름 한 줄이 오른쪽으로 가다가 끝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다. 갈래는 주황, 노랑, 파랑이고 노란 갈래의 마지막 칸에는 작은 우산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 줄 노트에는 「최근에 보고 실망했던 영화는 무엇인가? 더 나은 결말을 구상해보자.」가 적혀 있다](/uploads/7baf88fd396af590.webp =720)

오늘 펼친 노트에는 질문이 하나 적혀 있었다.

> 최근에 보고 실망했던 영화는 무엇인가? 더 나은 결말을 구상해보자.

누구에게나 그런 영화가 하나쯤은 있다. 두 시간 내내 잘 쌓아 놓고 마지막 십 분에 무너지는 영화. 극장을 나서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끝냈을 텐데"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되는 영화. 실망이 클수록 머릿속에서는 벌써 다른 결말이 돌아간다. 주인공이 그 문을 열지 않았다면, 악당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는 2019년에 다들 봤다.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끝나자 "제대로 된 작가로 마지막 시즌을 다시 만들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며칠 만에 서명이 100만 명을 넘었다([CBS](https://www.cbsnews.com/philadelphia/news/nearly-900000-fans-sign-petition-to-remake-game-of-thrones-season-8-with-competent-writers/)). 물론 HBO는 다시 만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다른 결말을 상상만 했다. 지금은 AI에게 부탁하면 몇 초 만에 읽을 수 있다. 오늘은 결말을 고쳐 쓰는 오래된 놀이가 AI를 만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 놀이를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지를 따라가 본다. 끝에는 원작부터 AI가 쓴 짧은 이야기를 하나 놓고, 결말을 마음대로 다시 짜 볼 수 있게 했다.

## 결말을 다시 쓰는 건 오래된 놀이다

![결말을 다시 써 온 역사를 그린 연표. 1870년 디킨스가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을 절반쯤 쓰고 세상을 떠나 독자들이 150년째 결말을 쓴다. 1979년 선택형 소설 Choose Your Own Adventure 시리즈. 198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드루드」가 범인을 관객 투표로 정한다. 2009년 팬픽 보관소 AO3가 문을 열어 지금은 1,800만 편이 넘는다. 2018년 넷플릭스 「밴더스내치」. 2019년 「왕좌의 게임」 재제작 청원에 100만 명 넘게 서명. 2021년 『베르세르크』 작가 별세, TV에서 AI 김광석이 노래한다. 2025년 뤼튼이 AI 캐릭터 채팅 「크랙」을 따로 내고, AO3 글 1,260만 편이 AI 학습용으로 긁혀 간다. 2021년과 2025년은 노란 점으로 AI가 끼어든 뒤를 표시했다](/uploads/4dccb5c42eb96dff.webp =720)

1870년 찰스 디킨스는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을 절반쯤 연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추리소설이었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기 전이었다. 그 뒤로 15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결말을 썼다. 1985년 브로드웨이에서 이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든 루퍼트 홈스는 아예 결말을 관객에게 넘겼다. 공연 막바지에 관객이 투표로 범인을 고르고, 배우들은 그날 뽑힌 결말을 연기한다. 이 뮤지컬은 이듬해 토니상 작품상을 받았다.

결말을 독자에게 맡기는 책도 있었다. 1979년부터 나온 「Choose Your Own Adventure」 시리즈는 "동굴로 들어가려면 23쪽으로, 돌아가려면 41쪽으로" 같은 식으로 독자가 갈림길을 고르게 했다. 2018년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같은 일을 영화로 했다. 시청자가 리모컨으로 주인공의 선택을 고르면 결말이 달라진다.

가장 큰 흐름은 팬픽이다. 원작의 인물과 세계를 빌려 와 다른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2009년 문을 연 팬 창작 보관소 AO3(Archive of Our Own)에는 2026년 9월 기준으로 1,800만 편이 넘는 글이 올라와 있다([Wikipedia](https://en.wikipedia.org/wiki/Archive_of_Our_Own)). 그 가운데 상당수가 "원작이 이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남이 잇기도 한다. 2021년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겐타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그의 오랜 친구인 만화가 모리 고지가 미우라의 스튜디오와 함께 연재를 잇기로 했다. 모리는 미우라에게 결말을 들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미우라에게 들은 에피소드만 그리겠다"고 했다([Gizmodo](https://gizmodo.com/berserk-manga-continuation-kentaro-miura-kouji-mori-1849028153)). 다시 시작한 첫 단행본 후기에는 "여기서부터는 미우라 없는 베르세르크"라고 적었다.

결말을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은 새로운 게 아니다. 새로운 건 속도와 문턱이다.

## AI가 문턱을 없앴다

예전에는 다른 결말을 읽으려면 누군가 그걸 써야 했다. 글을 잘 쓰는 팬이 몇 주를 들여 쓴 팬픽을 기다리거나, 내가 직접 써야 했다. 이제는 대화창에 "그 영화 결말에서 주인공이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써 줘"라고 치면 된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써 달라고 하면 된다. 완결 없이 멈춘 웹소설의 다음 화도, 열린 결말로 끝난 영화의 후일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몇 번이고 다시 받아 볼 수 있다.

이게 시장이 됐다. 국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예가 뤼튼이다. 처음엔 글쓰기를 돕는 AI 도구로 시작했는데, 사용자들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AI 캐릭터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캐릭터챗'이었다. 2024년 10월 말 부분 유료화를 하자 한 달 만에 월 매출이 10억 원을 넘었다([디지털데일리](https://m.ddaily.co.kr/page/view/2025033014465765582)). 뤼튼은 2025년 4월 이 서비스를 '크랙'이라는 별도 앱으로 떼어 냈고, 크랙은 출시 첫날 앱스토어 엔터테인먼트 다운로드 1위에 올랐다([AI타임스](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402)). 사용자는 정해진 줄거리를 읽는 대신 인물과 대화하며 이야기를 그때그때 만들어 간다. 결말을 고르는 정도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같이 쓰는 셈이다.

경쟁도 치열하다. 2026년 2월 와이즈앱 조사에서 스캐터랩의 '제타'는 월간 사용자 402만 명으로 크랙(98만 명)의 네 배쯤이었다([딜사이트](https://dealsite.co.kr/articles/167500)). 수치는 조사마다 다르지만, 이야기를 읽기만 하지 않고 만지작거리고 싶은 사람이 수백만 명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 수요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는 더 정돈된 시장이 생길 것이다.

## 그런데 그건 누구의 이야기인가

여기서부터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고쳐 쓴 결말은 누구의 것인가.

먼저 AI가 쓴 글 자체. 지금의 법은 대체로 사람이 쓴 것만 저작물로 본다. 미국에서는 AI가 혼자 그린 그림의 저작권 등록을 두고 소송이 붙었는데, 2025년 3월 연방항소법원이 "저작권법은 사람을 저작자로 전제한다"며 등록 거부가 옳다고 판단했고, 2026년 3월 대법원이 상고를 받지 않으면서 확정됐다([IPWatchdog](https://ipwatchdog.com/2025/03/24/d-c-circuit-upholds-human-authorship-requirement-thaler-v-perlmutter/)). 한국도 비슷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5년 6월 낸 안내서는 사람의 창작적 개입이 없는 AI 산출물은 등록할 수 없고, 사람이 만든 부분만 나눠서 등록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만화의 글은 사람이, 그림은 AI가 그렸다면 글만 등록된다는 식이다([다음 뉴스](https://v.daum.net/v/20250613082054349?f=p)).

다음은 원작. 남의 소설이나 영화를 바탕으로 새 결말을 쓰면 그건 2차적저작물이고, 그걸 만들고 퍼뜨릴 권리는 원작자에게 있다. 팬픽은 수십 년째 이 회색지대에 산다. 돈을 받지 않고 원작을 밝히면 대개 눈감아 주지만, 그건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원작자가 너그러워서다. 팬 창작을 반기는 작가도 있고 분명히 막는 작가도 있다. 그런데 AI를 거치면 이 회색지대가 훨씬 넓고 빨라진다. 한 사람이 하룻밤에 수백 개의 결말을 만들 수 있고, 그걸 팔고 싶어지는 순간 원작자의 시장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마지막으로 거꾸로 된 문제도 있다. 팬들이 쓴 글이 AI의 재료가 되는 일이다. 2025년 4월에는 누군가 AO3의 글 1,260만 편을 긁어 모아 AI 학습용 데이터셋으로 허깅페이스에 올렸다. 팬 작가들의 삭제 요청이 쏟아졌고 데이터셋은 일주일쯤 뒤 내려갔지만, 올린 사람은 다른 나라 사이트에 다시 올렸다([Fanlore](https://next.fanlore.org/wiki/Theft_of_Fanworks_Perpetrated_by_nyuuzyou)). 남의 원작을 빌려 쓰던 팬들이 이번에는 빌려 가는 쪽을 향해 화를 냈다. 결말을 고쳐 쓰는 AI도 결국 누군가의 글을 읽고 배운 것이다. AI로 만든 이야기를 두고 "그것도 결국 학습된 무언가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반론이 늘 따라붙는 이유다.

## 그래서 원작부터 AI가 쓴다면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원작부터 AI가 쓰고, 그 원작을 처음부터 "결말은 마음대로 다시 짜도 좋다"고 내놓는 것이다. 빼앗길 원작자의 결말이 없다. 원작이 충분히 재미있다면, 독자들이 저마다 다른 결말을 만들어 돌려 보는 것 자체가 놀이가 된다. 「드루드」 뮤지컬이 관객 투표로 범인을 정했던 것처럼, 결말을 고르는 일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

물론 그 AI 원작도 사람들이 쓴 수많은 글을 배워서 나왔다는 문제는 남는다. 이 문제는 결말 놀이 하나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학습 데이터에 대한 동의와 보상을 어떻게 할지는 법정과 국회에서 아직 다투는 중이다. 다만 적어도 "특정 작가가 애써 맺은 결말을 내 마음대로 바꿔서 판다"는 가장 분명한 문제는 피해 갈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위해 짧은 이야기 하나를 AI에게 처음부터 쓰게 했다. 「막차의 노란 우산」이다. 은퇴를 일주일 앞둔 버스 기사와, 밤마다 막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는 노란 우산의 여자아이 이야기다. 결말 직전에서 끊어 두었다. 결말은 아래 놀이판에서 각자 짜 보시면 된다.

## 놀이판: 결말 다시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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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다시 짜기 놀이판. 탭이 둘이다. 「결말 다시 짜기」에는 이 글을 위해 AI가 처음부터 쓴 짧은 이야기 「막차의 노란 우산」이 결말 직전까지 실려 있다. 은퇴를 앞둔 버스 기사 정만수와, 밤마다 노란 우산을 들고 종점까지 가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누가 움직이나', '무엇이 드러나나', '무엇을 치르나', '마지막 장면' 네 벌에서 카드를 한 장씩 고르면 결말 네 문단이 이어 붙고, 따뜻함과 놀라움을 점으로 보여 준다. 주사위 단추로 아무렇게나 굴릴 수 있고, 81가지 가운데 원작 결말도 볼 수 있다. 「어디까지 괜찮을까」는 연재가 멈춘 웹소설 다음 편을 혼자 읽기, 무료로 나누기, 팔기, 고인의 목소리로 신곡 만들기, 유족이 동의한 추모 영상, 떠난 가족을 챗봇으로 만들기 등 일곱 가지 상황에 '괜찮다·애매하다·안 된다'를 고르면 내 생각과 견줘 볼 수 있다. 답은 저장하지 않는다.
```

카드 문장은 미리 써 둔 것을 이어 붙인다. 놀이판이 AI를 직접 부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네 벌에서 한 장씩 고르기만 해도 결말이 81가지 나온다. 만수가 끝까지 버스를 모는 결말, 둘이 빗속을 걸어가는 결말, 아이가 혼자 내리는 결말이 있고,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도 세 가지로 갈린다. 해 보면 알겠지만 어떤 조합은 원작 결말보다 마음에 든다. 원작 결말도 81가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마음에 드는 조합이 나오면 그다음은 직접 이어 써 보셔도 좋다. 원작이 AI 것이니 누구 눈치 볼 일이 없다.

## 세상을 떠난 사람의 목소리

결말을 다시 쓰는 일이 가장 아프게 닿는 곳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2021년 1월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는 1996년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되살려, 그가 생전에 부른 적 없는 2002년 노래 「보고 싶다」를 부르게 했다. 한 칼럼은 그때 반응을 "놀랍다", "소름 끼친다", "감동적이다"에 "무섭다", "걱정된다"가 섞여 있었다고 적었다([다음](https://v.daum.net/v/AO3CbpHmAG)). 그보다 1년 전인 2020년 2월에는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희귀병으로 일곱 살 딸을 잃은 어머니가 VR 속에서 딸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여 줬다. 어머니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느낌이 비슷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했다. 많은 시청자가 함께 울었고, 한편에서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방송 소재로 써도 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방송 뒤 어머니의 블로그에는 위로와 함께 악플도 달렸고, 결국 SNS를 닫았다는 보도가 나왔다([위키트리](https://www.wikitree.co.kr/articles/503752)). 이후에도 전문가들은 이런 기술을 상용화하기 전에 윤리적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머니투데이](https://www.mt.co.kr/tech/2021/02/14/2021020919112092634)).

같은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끝내 못 한 작별 인사를 할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떠난 사람의 결말을 남이 고쳐 쓰는 일처럼 느껴진다. 둘 다 맞는 말이라서 어렵다. 그래도 사례들을 보면 사람들이 선을 긋는 자리는 꽤 비슷하다. 가족이 동의했는가, AI로 만들었다고 분명히 밝혔는가, 그걸로 누가 돈을 버는가. 2026년 4월 일레븐랩스가 고 김광한 DJ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했을 때는 유족에게 미리 동의를 받았고, 콘텐츠 파일에 AI 생성 여부를 기록하는 국제 표준(C2PA)도 붙였다고 밝혔다([스마트투데이](https://www.smarttoday.co.kr/ko-kr/articles/106582)). 한국은 2022년 부정경쟁방지법을 고쳐 유명인의 이름·얼굴·목소리 같은 표지를 허락 없이 써서 이익을 얻는 행위를 막는 조항도 넣었다.

![결말을 다시 쓸 때 선을 긋는 자리를 3×3 표로 그린 그림. 가로는 혼자 읽는다, 무료로 나눈다, 돈을 받는다. 세로는 AI가 쓴 원작·내가 쓴 원작, 남이 쓴 작품, 실존 인물·세상을 떠난 사람. AI 원작은 혼자 읽기와 무료로 나누기가 마음껏, 돈을 받으면 대체로 괜찮다. 남의 작품은 혼자 읽기는 괜찮고, 무료로 나누기는 애매하며 작가의 팬 창작 방침을 따르고, 판매는 안 된다. 실존 인물·고인은 혼자는 조심스럽게, 나누기는 동의가 있을 때만, 돈을 받는 건 안 된다. 아래 화살표에 멀리 내보낼수록 허락이 필요해진다고 적혀 있다. 한 사람의 의견이며 법률 자문이 아니다](/uploads/2fdd29afe05373c1.webp =720)

내 선을 그려 보면 위 그림쯤 된다. 두 가지만 묻는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내보내는가. AI가 쓴 원작이나 내가 쓴 원작이라면 마음껏 논다. 남의 작품이라면 혼자 읽는 건 괜찮지만, 나누려면 작가의 뜻을 따르고, 팔면 안 된다. 실존 인물이나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면 혼자 하는 일도 조심스럽고, 남에게 보여 주려면 가족의 동의가 먼저다. 멀리 내보낼수록 허락이 더 필요해진다. 법률가의 판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이다. 놀이판의 「어디까지 괜찮을까」에서 각자의 선을 그어 보시면 나와 얼마나 다른지 볼 수 있다.

## 결말을 고쳐 쓰는 건 다시 읽는 일이다

노트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최근에 보고 실망했던 영화는 무엇인가. 더 나은 결말을 구상해 보자.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그 영화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어디서부터 마음이 떠났는지,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내가 기대한 건 무엇이었는지. 그러니 결말을 고쳐 쓰는 건 원작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원작을 한 번 더 꼼꼼히 읽는 일이다. 디킨스의 독자들이 150년 동안 드루드의 결말을 쓴 것도 그 소설을 그만큼 오래 읽었다는 뜻이다.

AI는 그 다시 읽기를 훨씬 쉽게 만들었다. 손쉬워진 만큼 지켜야 할 것도 분명해졌다. 남이 맺은 결말은 남의 것으로 남겨 두고, 내가 쓴 결말은 내 서랍에서 즐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결말은 함부로 고치지 않는 것. 그 선만 지키면, 실망한 영화 한 편이 꽤 즐거운 놀이가 된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아이디어 노트를 아무 데나 펼쳐, 거기 적힌 한 줄에 그날의 생각을 얹는 연재다. 오늘은 질문 하나가 스물두 번째 글이 됐다. 이 연재의 결말은 아직 나도 모른다. 마음에 안 들면, 다음 페이지에서 다시 쓰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