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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노트 한 장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한정된 특별한 시간을 할애하라」라고 적혀 있고, 왼쪽에는 하루 24칸 가운데 대부분이 '보는 시간'으로 칠해지고 몇 칸만 '만드는 시간'으로 따로 떼어진 시간표가 있다. 위쪽에 「만드는 시간은 따로 떼어 두어야 생긴다」라는 제목이 있다
연재오늘의 한 페이지 · 15회

만드는 시간은 따로 떼어 두어야 생긴다

노트에 적힌 문장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한정된 특별한 시간을 할애하라'였다. 요즘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남이 만든 것을 보며 보낸다. AI 덕에 만드는 값이 싸지면서 볼거리는 더 빨리 불어난다. AI가 창의성 시험에서 사람을 이겼다는 연구와 가장 뛰어난 사람은 여전히 AI보다 낫다는 연구, 배관공이 다시 뜬다는 말과 그 말의 빈틈을 차례로 짚었다. 그다음 사람의 창의성을 지키려면 하루의 어느 시간을 어떻게 떼어 놓아야 하는지 정리했다. 오늘의 한 페이지 열다섯 번째 글.

· SYSOP · 조회 4

줄 노트 한 장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한정된 특별한 시간을 할애하라」라고 적혀 있고, 왼쪽에는 하루 24칸 가운데 대부분이 '보는 시간'으로 칠해지고 몇 칸만 '만드는 시간'으로 따로 떼어진 시간표가 있다. 위쪽에 「만드는 시간은 따로 떼어 두어야 생긴다」라는 제목이 있다

오늘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한정된 특별한 시간을 할애하라.

문장을 읽고 오늘 하루를 되짚어 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으로 뉴스를 훑었고, 출근길에는 짧은 영상을 몇 개 넘겼다. 점심을 먹으면서 누가 정리한 글을 읽었고, 저녁에는 누가 만든 드라마를 볼 생각이다. 하루의 거의 전부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는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처음부터 만든 시간은 몇 분이나 될까.

볼거리는 점점 싸게 불어난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2025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를 보면, 13세 이상 국민 가운데 일주일에 닷새 이상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92.0%다. OTT를 쓰는 사람은 81.8%이고, 그 가운데 주로 보는 OTT 서비스로 숏폼을 꼽은 사람이 78.9%로 가장 많았다(데일리안). 보는 일은 이미 하루의 기본값이 됐다.

여기에 AI가 붙었다. 이제는 무엇을 만드는 데 드는 값이 거의 0에 가깝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디저(Deezer)가 낸 숫자가 그걸 잘 보여 준다.

디저에 하루 올라오는 곡 가운데 AI가 통째로 만든 곡의 비율. 2025년 1월 약 10%, 4월 18%, 9월 28%, 2026년 4월 44%(하루 약 7만 5천 곡)로 늘었다. 같은 시기 전체 재생 가운데 AI 곡의 몫은 1~3%에 그친다

디저는 2025년 1월 AI 곡 탐지기를 붙이고 나서 하루에 올라오는 곡의 약 10%가 AI가 통째로 만든 곡이라고 밝혔다. 이 비율은 4월에 18%, 9월에 28%가 됐고(Digital Music News), 2026년 4월에는 44%, 하루 7만 5천 곡에 이르렀다. 이 곡들이 전체 재생에서 차지하는 몫은 1~3%뿐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조작된 재생으로 걸러진다(Engadget).

나는 이 두 숫자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올라오는 곡의 절반 가까이를 AI가 만들어도, 사람들이 실제로 찾아 듣는 곡은 여전히 사람이 만든 쪽이다. 만드는 일이 싸졌다고 해서 사람이 찾는 것까지 싸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이 만드는 것에는 아직 무엇이 남아 있는 걸까.

AI도 충분히 창의적이라는 근거

먼저 AI가 이미 충분히 창의적이라는 쪽의 근거부터 보자. 생각보다 많다.

2023년 미국 몬태나대학교의 에릭 구직(Erik Guzik) 연구팀은 GPT-4로 움직이는 ChatGPT에게 토런스 창의적 사고 검사를 치르게 했다. 채점 기관은 어느 답안이 AI 것인지 모른 채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독창성과 유창성 모두 상위 1%였다(몬태나대학교). 같은 해 핀란드 투르쿠대학교의 미카 코이비스토(Mika Koivisto)와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의 시모네 그라시니(Simone Grassini)는 사람 256명과 챗봇 셋에게 밧줄·상자·연필·초를 달리 쓰는 방법을 물었다. 평균 점수는 챗봇이 사람보다 높았다(Scientific Reports).

연구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청레이 쓰(Chenglei Si)·디이 양(Diyi Yang)·다쓰노리 하시모토(Tatsunori Hashimoto)는 2024년에 자연어 처리 연구자 100명 남짓을 모아 AI가 낸 연구 아이디어와 전문가가 낸 아이디어를 이름을 가린 채 비교하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AI 쪽을 더 새롭다고 평가했다(arXiv).

창의성을 '사람이 생각 못 한 수를 두는 능력'이라고 하면 더 오래된 예도 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둔 두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둔 37수는 사람 기사라면 만 번에 한 번 둘까 말까 한 수였다. 해설진도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국이 끝나고 보니 그 수가 판을 갈랐다. 2025년 5월에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이볼브(AlphaEvolve)가 4×4 복소수 행렬을 곱셈 48번으로 곱하는 방법을 찾았다. 1969년 슈트라센의 49번 이후 이 조건에서 56년 동안 깨지지 않던 기록이다(Google DeepMind).

여기까지 보면 'AI는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그대로 쓰기 어렵다. 적어도 시험지 위에서, 바둑판 위에서, 수식 위에서는 그렇다.

꼭대기는 아직 사람이라는 근거

같은 연구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코이비스토와 그라시니의 연구는 논문 제목부터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여전히 창의적 확산 사고 과제에서 AI를 앞선다』였다. 평균은 챗봇이 높았지만, 가장 좋은 답을 낸 사람은 여덟 개 채점 항목 가운데 일곱 개에서 모든 챗봇의 최고 답보다 높았다. 평균을 뛰어넘는 꼭대기는 여전히 사람 차지였다. 사람 답에는 형편없는 답도 많이 섞여 있었다. 사람의 창의성은 고르지 않은 대신 끝이 뾰족하다.

스탠퍼드 연구팀은 2025년에 후속 연구를 냈다. 이번에는 아이디어를 평가만 하지 않고 실제로 해 봤다. 연구자 43명에게 AI 아이디어나 사람 아이디어를 무작위로 하나씩 맡겨 저마다 100시간 넘게 연구를 진행하게 하고, 그 결과로 쓴 논문을 다시 눈가림 심사에 부쳤다. 그러자 AI 아이디어의 점수가 새로움·흥미·효과·종합 점수 모두에서 사람 아이디어보다 크게 떨어졌다. 여러 항목에서는 순위가 뒤집혀 사람 쪽이 앞섰다(arXiv). 연구팀은 이 차이를 '구상과 실행 사이의 간극'이라고 불렀다. 그럴듯해 보이는 아이디어와 해 보니 되는 아이디어는 다르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아닐 도시(Anil Doshi)와 엑서터대학교의 올리버 하우저(Oliver Hauser)가 2024년에 낸 연구다. 사람들에게 짧은 소설을 쓰게 하면서 일부에게만 AI가 낸 아이디어를 보여 줬다. AI 아이디어를 받은 사람의 소설은 더 창의적이고 더 잘 썼다는 평을 받았다. 원래 글솜씨가 덜한 사람일수록 덕을 많이 봤다. 그런데 그 소설들을 모아 놓고 보니 서로 훨씬 비슷했다(Science Advances). 한 사람 한 사람은 나아졌는데, 모두를 합친 세상은 더 단조로워졌다. 연구진은 이것을 사회적 딜레마라고 불렀다.

나는 이 세 연구를 이렇게 읽었다. AI는 좋은 것들의 평균을 아주 잘 낸다. 평균만 놓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보다 낫다. 그러나 평균에서 멀리 벗어난 한 점, 직접 해 봐야만 알 수 있는 한 점, 남과 달라서 가치 있는 한 점은 아직 사람에게서 더 자주 나온다. 범용 인공지능이 가까워졌다는 기사가 매주 나오지만, 적어도 오늘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창의적인 영역에서 누구나 AI보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그 '누구나'에는 조건이 붙는다.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겠다.

배관공이 다시 뜬다는 말

요즘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AI 시대에는 목수, 전기공, 배관공 같은 기술직이 다시 뜬다는 것이다.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2025년 6월 팟캐스트 『다이어리 오브 어 CEO』에 나와, 초지능 시대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배관 일을 배우라는 취지로 답했다. 반복적인 지식 노동은 AI가 대신하겠지만, 몸으로 물건을 다루는 일에서 AI가 사람만큼 잘하게 되려면 아직 한참 걸린다는 이유였다(Storyboard18).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2026년 1월 다보스에서 배관공, 전기공, 건설 노동자가 연봉 10만 달러를 넘게 받게 될 거라고 말했다(Bloomberg Law).

두 사람의 이유는 같지 않다. 젠슨 황의 말은 수요 이야기다. AI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전기를 깔고 배관을 놓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힌턴의 말은 능력 이야기다. 1980년대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짚었듯, 컴퓨터에게는 체스보다 걷고 잡는 일이 어렵다. 사람에게 쉬운 일이 기계에게는 어렵다는 이 '모라벡의 역설'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배관 일은 겉으로 보면 정해진 절차를 되풀이하는 일 같다. 정량화하고 자동화하기 좋아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똑같은 현장이 하나도 없다. 40년 된 아파트의 벽 속 배관은 도면과 다르게 지나가고, 앞서 고친 사람이 남긴 엉뚱한 이음새가 있고, 집주인이 감당할 수 있는 공사비가 정해져 있다. 그 사이에서 매번 새로 답을 지어내야 한다. 창의성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 생각을 먼저 한 사람들이 있다. 교육학자 마이크 로즈는 2004년 책 『The Mind at Work』에서 목수, 용접공, 미용사, 배관공, 전기공, 식당 종업원의 일을 오래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목수는 복잡한 공간 계산을 머릿속에서 해내고, 종업원은 여러 주문과 손님의 기분과 주방의 속도를 한꺼번에 저글링한다. 로즈는 이런 몸의 일에 담긴 판단력과 기억력과 지각이 '머리 쓰는 일'과 '몸 쓰는 일'을 가르는 고정관념 때문에 늘 낮게 평가돼 왔다고 썼다(펭귄랜덤하우스). 철학 박사 매슈 크로퍼드는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대표 자리를 다섯 달 만에 그만두고 오토바이 정비소를 차렸다. 그는 2009년 책 『Shop Class as Soulcraft』에서 시동이 안 걸리는 오토바이 앞에서 가설을 세우고, 공구로 확인하고, 틀리면 다시 세우는 과정이 어떤 사무실 일보다 깊은 사고였다고 말한다(NPR).

물론 반대쪽 근거도 있다. 힌턴 자신도 같은 자리에서 AI가 결국 모든 면에서 사람보다 나아질 거라고 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수천 명이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요리하고 수건을 개는 모습을 찍는다. 시간당 250루피쯤 받고 찍은 그 영상은 로봇이 사람 손놀림을 따라 배우는 데이터가 된다(Al Jazeera). 오늘의 배관공이 안전한 이유가 '로봇의 손이 아직 서툴러서'뿐이라면, 그 안전은 손이 나아지는 만큼 줄어든다. 그러니 기술직을 버티게 하는 건 직업의 이름보다 매번 다른 현장 앞에서 새 답을 지어내는 능력 쪽이라고 나는 본다. 그 능력은 사무실에도 부엌에도 책상에도 있다.

창의성은 쓰지 않으면 줄어든다

앞에서 '누구나'에 조건이 붙는다고 했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재능이기도 하지만, 쓰지 않으면 녹스는 근육에 더 가깝다.

2025년 MIT 미디어랩의 나탈리야 코스미나(Nataliya Kosmyna) 연구팀은 대학생 54명을 세 무리로 나눠 에세이를 쓰게 했다. 한 무리는 ChatGPT를, 한 무리는 검색 엔진을 썼고, 한 무리는 아무 도구 없이 썼다. 뇌파를 재 보니 도구 없이 쓴 무리의 뇌 연결이 가장 넓고 강했고, ChatGPT 무리가 가장 약했다. ChatGPT 무리의 에세이는 서로 비슷했고, 자기가 쓴 문장을 잘 떠올리지 못했다. 네 번째 시간에 두 무리의 조건을 맞바꾸자 차이가 더 또렷해졌다. ChatGPT로 쓰다가 혼자 쓰게 된 사람들은 뇌가 덜 깨어났다. 반대로 혼자 쓰다가 ChatGPT를 받은 사람들은 기억도 잘했고 뇌의 여러 영역이 활발했다(arXiv).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 공개 논문이라 조심해서 읽어야 하지만, 순서가 중요하다는 점은 앞의 도시·하우저 연구와도 맞닿는다. 내 생각이 먼저 있고 AI가 뒤에 오면 AI는 도구가 된다. AI가 먼저 오면 내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줄어든다.

볼거리도 같은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한다. 2014년 버지니아대학교의 티머시 윌슨(Timothy Wilson) 연구팀은 사람들을 빈방에 6분에서 15분 동안 혼자 앉혀 두고 그냥 생각만 하게 했다. 대부분이 이 시간을 괴로워했다. 한 실험에서는 방 안에 스스로 전기 충격을 줄 수 있는 버튼을 뒀는데, 미리 돈을 내서라도 충격을 피하겠다고 답했던 사람들 가운데 남성의 67%, 여성의 25%가 버튼을 한 번 이상 눌렀다(Science). 아무것도 안 보고 생각만 하는 15분이 그만큼 견디기 어렵다. 그 빈 15분을 숏폼이 채워 주니, 우리는 빈 시간을 거의 겪지 않고 산다.

그런데 그 빈 시간이 바로 생각이 자라는 자리다. 2014년 영국 센트럴랭커셔대학교의 샌디 만(Sandi Mann)과 리베카 캐드먼(Rebekah Cadman)은 사람들에게 15분 동안 전화번호부를 베껴 쓰게 한 다음 플라스틱 컵의 쓰임새를 생각해 내게 했다. 지루한 일을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쓰임새를 더 많이 떠올렸다. 전화번호부를 그냥 읽기만 한 사람들, 즉 가장 지루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렸다. 연구진은 지루함이 공상을 부르고, 공상이 창의성으로 이어진다고 봤다(Creativity Research Journal). 아홉 번째 글 『욕조를 닦다 보면 다시 쓰고 싶어진다』와 열 번째 글 『아이디어는 딴짓할 때 와서 금방 간다』에서 한 이야기와도 이어진다.

한정된 특별한 시간을 어떻게 떼어 둘까

노트의 문장에서 내가 다시 본 낱말은 '한정된'과 '특별한'이다. 창조하는 시간은 하루 내내일 필요가 없다. 사실 그럴 수도 없다. 대신 그 시간은 다른 시간과 섞이지 않게 따로 떼어 둬야 한다. 지금까지 본 연구와 사례에서 내가 건진 방법은 이렇다.

첫째, 덩어리로 떼어 둔다. 프로그래머이자 투자자인 폴 그레이엄은 2009년 글 『만드는 사람의 일정, 관리하는 사람의 일정』에서, 관리자는 하루를 한 시간 단위로 쪼개 쓰지만 만드는 사람은 적어도 반나절 단위로 시간을 써야 한다고 했다. 회의 하나가 오전 한가운데 끼면 그 오전 전체가 제대로 일하기엔 너무 잘게 쪼개진다는 것이다(Paul Graham). 반나절이 어렵다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좋다. 다만 그 한 시간 사이에 알림이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

둘째, 보기 전에 만든다. 하루를 남의 것으로 열면 그날의 생각은 남의 것에서 출발한다. 아침 첫 시간, 휴대폰을 열기 전에 한 줄이라도 내 것을 적어 본다. 이 연재가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는 데서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셋째, 내 초안이 먼저, AI는 그다음. 코스미나 연구의 '혼자 쓰다가 AI를 받은 무리'처럼, 내 머리로 먼저 거칠게라도 짜 본 다음 AI에게 다듬게 한다. 이 순서를 지키면 AI는 생각을 넓히는 도구가 되고, 도시·하우저 연구가 보여 준 '모두가 비슷해지는 세상'에서도 조금 비켜날 수 있다.

넷째, 지루함을 허락한다. 빈 15분을 바로 화면으로 메우지 않는다. 걷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그냥 창밖을 본다. 윌슨의 실험이 보여 주듯 처음엔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조금 버티면 만과 캐드먼의 실험처럼 생각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다섯째, 손으로 무언가를 고친다. 크로퍼드가 오토바이 앞에서 생각했듯, 손으로 하는 일은 매번 다른 문제를 내준다. 고장 난 서랍 레일이든, 화분 분갈이든 상관없다. 정해진 답이 없는 작은 현장을 하루에 하나씩 만나는 일이 창의성의 근육을 쓰게 한다.

다시 노트 앞에서

AI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오늘 내가 적은 'AI가 아직 못 하는 것'의 목록은 한두 해 뒤에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같은 AI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세상에서는, 다른 질문을 떠올리는 사람이 귀해진다. 디저에 하루 7만 5천 곡이 올라와도 사람들이 찾아 듣는 곡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런데 그 다른 질문은 남이 만든 것을 보는 시간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나만의 빈 시간, 내 손으로 무언가를 지어 보는 시간에서 나온다. 그래서 노트의 문장은 '시간을 내라'가 아니라 '할애하라'고 했던 것 같다.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일을 덜어 내고 일부러 내주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오늘은 이 글을 쓰는 동안 휴대폰을 엎어 두었다. 그게 오늘 내가 할애한 한정된 특별한 시간이었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노트 속 한 줄에서 출발해 오늘의 생각 한 장에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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