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람 (4) — 두 세계를 잇는 사람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가지를 잇는 자리에 선 사람은 드물어서 값집니다. 서예와 컴퓨터, 의학과 개발 — 교차점이 만드는 희소한 부가가치 이야기입니다.
부가가치는 한 우물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가지를 잇는 자리에서도 나옵니다. 그 자리에 선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쓸모없어 보이던 수업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자퇴한 뒤 서예 수업을 청강했습니다. 당장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였다고 합니다. 글자체의 종류, 자간, 좋은 타이포그래피가 왜 아름다운지를 배웠습니다. 10년 뒤 그는 그 수업을 매킨토시에 이식합니다. 그는 훗날 "그 수업이 없었다면 맥은 여러 서체나 균형 잡힌 글자 간격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술과 서예. 겹칠 일 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만난 자리에서, 남이 못 만든 컴퓨터가 나온 것입니다.

두 언어를 다 하는 사람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인물 | 두 분야 | 만든 것 |
|---|---|---|
| 어느 영상의학과 전문의 | 의학 + 개발 | 흩어진 의료 데이터를 잇는 플랫폼 |
| 어느 물리학자 | 물리학 + 뇌·대중소통 | 융합 학문과 대중 과학 |
| 어느 건축가 | 건축 + 인문학 | 도시를 이야깃거리로 |
어느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원래 개발자이기도 했습니다. 의학과 IT라는 두 언어를 다 하니, 남들 눈에 안 보이던 문제, 곧 흩어져 관리되는 의료 데이터가 정확히 보였습니다. 그는 그 교차점에서 의료정보 플랫폼을 창업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한 어느 학자는 그 방법론을 뇌와 의사결정에, 다시 대중과의 소통에 옮겨 심어 융합 학문의 얼굴이 됐습니다. 건축가는 도시라는 공간을 인문학의 언어로 옮겨, 건축을 대중의 이야깃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부가가치는 '한 분야에서 최고'라서가 아니라, '두 분야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드물어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취업 시장으로 옮기면 더 분명해집니다. 이력서에 '파이썬 가능'이라고 적으면 수천 명과 경쟁합니다. '파이썬 + 의료영상 경험'이라고 적으면 경쟁자가 급격히 줍니다. 거기에 '현장 임상 경험'까지 더하면 거의 없습니다. 하나하나는 평범해도, 조합이 희소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멀수록 희소하다
교차점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업을 아는 개발자, 디자인을 하는 마케터, 요리를 하는 데이터 분석가. 겹치는 부분이 적은 둘을 이을수록 희소해집니다.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30년 만에 천체물리학 박사를 마치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회사의 기술책임자가 과학의 방법으로 요리책을 다시 써서 요리서의 기준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두 세계가 멀수록, 그 사이를 잇는 다리는 드물고 값진 법입니다.
할리우드 배우였던 헤디 라마는 스크린 밖에서 통신 기술을 발명했습니다. 적의 방해를 피해 주파수를 계속 바꿔 가며 신호를 보내는 방식을 고안해 1940년대에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배우라는 정체성과 공학이라는 정체성, 세상이 겹칠 리 없다고 여긴 두 자리에 그는 동시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교차점에서 남들이 상상도 못 한 것이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교차점이 대개 '쓸모없어 보이던 것'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잡스의 서예도, 라마의 취미 발명도 당시엔 본업과 무관해 보였습니다. 곁길처럼 보이던 관심이 뒷날 본길과 만나 값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 쓸모를 따지기 어려운 배움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 하는 편입니다. 지금은 흩어진 점이지만, 언젠가 이어져 나만의 선이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잘 지내고 그들의 기술을 응용할 줄 아는 것 자체가 교차점입니다. 혼자 다 배우지 않아도, '저쪽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정도면 다리가 됩니다. 그리고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드뭅니다.
중요한 것은 깊이가 아니라 연결입니다. 두 분야 모두에서 전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한쪽에 단단히 서서 다른 쪽으로 손을 뻗으면, 거기서 나만의 부가가치가 자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왜 지금 해야 하는지를 짚어 보려 합니다. 시대가 통째로 바뀌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