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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종이 질감의 따뜻한 색조 이미지
컬럼

여름의 끝에서 다시 읽는, 오래된 공책과 손글씨와 그 사이에 낀 영수증에 관하여

· 오시오 편집부

서랍 맨 아래 칸은 언제나 지층 같다. 위쪽은 최근이고 아래로 갈수록 오래된 것이 나온다.

스무 장짜리 공책

첫 장에는 그해의 계획이 적혀 있었다. 둘째 장부터는 계획이 아니라 목록이었다.
사야 할 것, 갚아야 할 것, 미뤄둔 것. 열 장쯤 넘어가면 글씨가 급해진다.

  1.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2. 목록은 대부분 지워졌다
  3. 그 사이에 낀 종이들만 그대로다

끼워져 있던 영수증에는 날짜와 금액과 상호가 남아 있다.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얼마를 냈는지는 적혀 있다.

기록은 남기려 할 때보다, 남겨질 때 더 정확하다.

공책은 다시 서랍 맨 아래로 돌아갔다. 다음에 꺼낼 때는 또 다른 지층이 위에 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