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조를 닦다 보면 다시 쓰고 싶어진다
노트에 적힌 문장은 '욕조나 목욕탕을 박박 문질러 닦아 보자. 당장 창조적인 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스스로에게 놀랄 것이다'였다. 설거지하며 줄거리를 짰다는 애거사 크리스티와 지루한 과제 뒤에 아이디어가 늘어난 실험들부터, 닦는 일과 짓는 일을 가르는 여섯 개의 자, 경제학자들의 일 분류와 로봇이 아직 욕조를 못 닦는 이유, AI를 쥐여 준 실험들의 결과까지 따라간다. 끝에는 일을 직접 나눠 보는 판을 만들었다. 오늘의 한 페이지 아홉 번째 글.

오늘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욕조나 목욕탕을 박박 문질러 닦아 보자. 당장 창조적인 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스스로에게 놀랄 것이다.
어디서 옮겨 적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출처를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도 문장이 하는 말은 금방 와닿는다. 마감을 앞두고 원고가 막히면 갑자기 책상 정리가 하고 싶어지고, 정리를 시작하면 이상하게 원고 생각이 난다. 몸은 걸레를 쥐고 있는데 머리는 쓰다 만 문단 쪽으로 자꾸 돌아간다.
이 문장에는 질문이 두 개 숨어 있다. 하나는 왜 닦다 보면 짓고 싶어지느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닦는 일과 짓는 일이 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둘이 그렇게 갈리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누구나 묻는 질문 하나와 만난다. 그럼 AI는 어느 쪽 일을 하는가.
욕조 앞에서 머리는 쉬지 않는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1966년 『뉴욕 타임스』 기자가 줄거리를 어떻게 짜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걸으면서, 아니면 그냥 설거지를 하면서요. 지루한 일이죠." 예전에는 욕조에 들어앉아 사과를 먹으며 줄거리를 짰고, 욕조 가장자리에 사과 심이 줄지어 놓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장편 추리소설만 예순 편 넘게 쓴 사람의 작업실 가운데 하나는 부엌 개수대였던 셈이다.
크리스티만의 버릇은 아니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그레이엄 월러스는 1926년 『생각의 기술(The Art of Thought)』에서 창의적 사고를 네 단계로 나눴다. 문제를 붙잡고 자료를 모으는 '준비', 손을 놓고 다른 일을 하는 '부화', 답이 불쑥 떠오르는 '발현', 떠오른 답이 맞는지 따지는 '검증'이다. 욕조를 닦는 시간은 이 가운데 부화에 해당한다. 문제를 내려놓은 것 같지만 머리 한쪽에서는 계속 굴리고 있다.
이 부화를 실험실에서 재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2년 벤저민 베어드와 조너선 스쿨러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흔한 물건의 쓰임새를 최대한 많이 떠올리게 했다. 그다음 12분 동안 네 가지 중 하나를 하게 했다. 머리를 많이 쓰는 과제, 머리를 거의 안 쓰는 쉬운 과제, 그냥 쉬기,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이어 하기였다. 쉬운 과제를 한 무리만 다시 풀었을 때 점수가 뚜렷하게 올랐다. 기사들은 그 폭을 40% 남짓으로 전했다. 쉬운 과제를 하는 동안 딴생각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올랐고, 처음 보는 새 문제에서는 효과가 없었다. 이미 붙잡고 있던 문제만 자라났다는 뜻이다.
다만 이 실험은 덧붙여 둘 말이 있다. 2024년 다른 연구진이 443명으로 같은 실험을 되풀이했는데 이 효과를 다시 얻지 못했다. 욕조 앞에서 아이디어가 자란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험실에서 늘 재현되는 법칙은 아니다.
다른 갈래의 실험도 있다. 2014년 영국 센트럴랭커셔대의 샌디 만과 리베카 캐드먼은 한 무리에게 전화번호부의 번호를 한참 베껴 쓰게 한 뒤 플라스틱 컵의 쓰임새를 떠올리게 했다. 베껴 쓴 무리가 아무것도 안 한 무리보다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번호를 베끼지도 않고 읽기만 한 무리가 가장 많이 냈다. 연구진은 더 지루할수록 공상할 틈이 커진다고 봤다. 같은 해 스탠퍼드의 메릴리 오페초와 대니얼 슈워츠는 걷기를 시험했다. 앉아 있을 때보다 걸을 때 창의성 점수가 오른 사람이 참가자의 81%였다.
정리하면 욕조 닦기에는 두 가지 힘이 함께 작용한다. 손이 바쁘고 머리가 한가하니 미뤄 둔 문제가 저절로 굴러간다. 그리고 그 일이 지루하니 몸이 빨리 다른 일로 가고 싶어 한다. 노트 문장이 말한 '놀람'은 아마 둘이 겹친 순간이다.
닦는 일과 짓는 일을 가르는 여섯 개의 자
그러면 욕조 닦기와 소설 구상은 무엇이 다를까. '단순한 일과 복잡한 일'이라고 하면 너무 뭉뚱그린 말이 된다. 욕조 닦기도 막상 해 보면 단순하지 않다. 곰팡이 낀 실리콘 줄눈은 따로 공략해야 하고, 배수구 둘레는 솔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일을 몇 가지 자로 재어 보기로 했다.
| 자 | 욕조 닦기 | 소설 구상 |
|---|---|---|
| 끝 모습이 정해져 있는가 | 하얗게 반짝이면 끝 | 무엇이 끝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
| 진척이 눈에 보이는가 | 한 번 문지를 때마다 보인다 | 하루 종일 쓰고도 제자리일 수 있다 |
| 절차로 쪼갤 수 있는가 | 세제 뿌리기, 불리기, 문지르기, 헹구기 | 순서를 적는 순간 이야기가 굳는다 |
| 틀려도 금방 아는가 | 덜 닦인 곳은 바로 보인다 | 잘못 든 길을 몇 달 뒤에 안다 |
| 머리를 비워도 되는가 | 된다. 그래서 딴생각이 난다 | 안 된다 |
| 몸이 현장에 가야 하는가 | 가야 한다 | 노트북만 있으면 된다 |
앞의 다섯 자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무엇을'이 이미 정해져 있고 '어떻게'만 남은 일과 '무엇을'부터 정해야 하는 일의 차이다. 앞쪽을 '닦는 일', 뒤쪽을 '짓는 일'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닦는 일은 끝이 보이고, 진척이 보이고, 틀린 데가 보인다. 그래서 지루하지만 마음이 편하다. 짓는 일은 셋 다 안 보인다. 그래서 막막하지만 끌린다.
마지막 자는 성격이 다르다. 몸이 거기 가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이 자는 사람에게는 별 차이가 없지만 기계에게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경제학자들이 먼저 그은 선
일을 이렇게 쪼개 본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다. 2003년 데이비드 오터, 프랭크 레비, 리처드 머네인은 컴퓨터가 일자리를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하려고 일을 두 개의 축으로 나눴다. 하나는 규칙으로 적을 수 있느냐(반복)와 없느냐(비반복), 다른 하나는 머리를 쓰느냐(인지)와 몸을 쓰느냐(육체)다.

그들의 결론은 이렇다. 컴퓨터는 규칙으로 적을 수 있는 일을 대신하고, 규칙으로 적을 수 없는 머리 쓰는 일은 돕는다. 그런데 규칙으로 적기 어려운 몸 쓰는 일에는 컴퓨터가 대신도 보조도 잘 못 한다. 논문은 이 칸의 예로 건물 청소와 트럭 운전을 들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어긋남이 생긴다. 앞의 여섯 자로 재면 욕조 닦기는 누가 봐도 닦는 일이다. 끝이 정해져 있고 절차도 뻔하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표에서는 '비반복' 칸에 들어간다. 사람에게 뻔한 절차가 기계에게는 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욕조마다 모양이 다르고, 때가 낀 자리와 굳기가 다르고, 미끄러운 곡면을 적당한 힘으로 눌러야 한다. 사람은 그걸 생각 없이 해내니까 쉽다고 느낄 뿐이다.
한 살 아기의 손이 체스보다 어렵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1988년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에 이렇게 썼다. 컴퓨터가 지능검사나 체커 게임에서 어른 수준을 보이게 하기는 비교적 쉽지만, 지각과 움직임에서 한 살 아기만큼의 솜씨를 주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이걸 '모라벡의 역설'이라 부른다. 사람이 어렵다고 느끼는 일은 기계에게 쉽고, 사람이 쉽다고 느끼는 일은 기계에게 어렵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역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23년 옥스퍼드대와 일본 연구진은 영국과 일본의 AI 전문가 65명에게 집안일 17가지가 앞으로 10년 안에 얼마나 자동화될지 물었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균은 집안일 시간의 39%였다. 가장 높은 것은 장보기로 59%, 가장 낮은 것은 아이를 몸으로 돌보는 일로 21%였다. 장보기가 높은 까닭은 그 일이 이미 화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주문은 앱으로 하고 배달은 다른 사람이 한다. 로봇이 장을 보는 게 아니다.
로봇청소기가 거실 바닥은 밀어도 욕조 안쪽 곡면과 줄눈을 박박 문지르는 로봇은 아직 집에 없다. 욕조 닦기는 사람에게는 가장 머리를 덜 쓰는 일인데, 기계에게는 꽤 어려운 숙제다.
그렇다면 AI는 무엇을 잘하나
몸이 필요 없는 일, 그러니까 화면 안의 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3년 오픈AI와 펜실베이니아대 등의 연구진은 미국 직업별 업무를 하나하나 따져, 일하는 사람의 약 80%가 업무의 10% 이상을 언어모델의 영향권 안에 두고 있다고 추정했다. 업무의 절반 이상이 영향권인 사람도 19%였다. 같은 해 한국은행도 국내 일자리의 12%, 약 341만 개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눈여겨볼 대목은 영향이 큰 쪽이 고학력·고소득 직업이라는 점이다. 기사들이 전한 예에는 의사와 회계사, 자산운용가가 들었다. 산업용 로봇이 공장의 반복 육체노동을 바꿨다면 언어모델은 사무실의 반복 인지노동부터 건드린다.
실제로 AI를 쥐여 주고 일을 시킨 실험들도 쌓였다.

- 보도자료와 업무 메일. MIT의 샤케드 노이와 휘트니 장은 2023년 직장인 453명에게 보도자료, 짧은 보고서, 분석 계획 같은 글쓰기 과제를 줬다. 챗GPT를 쓴 무리는 걸린 시간이 40% 줄고 평가자가 매긴 품질은 18% 올랐다. 원래 글을 못 쓰던 사람일수록 많이 좋아져 사람 사이의 차이가 줄었다.
- 고객 상담. 에릭 브린욜프슨 연구진은 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상담원 5천여 명을 지켜봤다. AI 도우미를 붙이자 시간당 해결 건수가 평균 15% 늘었다. 2023년 초고에서 신입·저숙련 상담원은 34% 늘었고, 숙련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베테랑의 응대 요령이 AI를 거쳐 신입에게 건너갔다.
- 컨설팅.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파브리치오 델아쿠아 연구진은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 758명에게 GPT-4를 쥐여 줬다. AI가 잘하는 과제에서는 12.2% 더 많은 일을 25.1% 더 빨리 끝냈고 품질은 40% 넘게 올랐다. 그런데 AI가 그럴듯하게 틀리기 쉬운 과제를 섞어 놓자 AI를 쓴 무리의 정답률이 19%포인트 떨어졌다. 연구진은 AI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의 경계가 매끈한 선이 아니라 들쭉날쭉한 톱니 모양이라고 해서 이를 '들쭉날쭉한 경계(jagged frontier)'라 불렀다.
- 숙련 개발자. 비영리 연구소 METR은 2025년 오픈소스 개발자 16명이 자기 저장소의 실제 과제 246개를 처리하는 과정을 무작위로 나눠 쟀다. AI 도구를 쓰면 시간이 19% 더 걸렸다. 개발자들은 시작 전 24% 빨라질 거라 예상했고, 끝난 뒤에도 20% 빨라졌다고 믿었다. 다만 METR은 이후 도구가 빠르게 바뀌어 이 결과가 지금은 낡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네 실험을 앞의 여섯 자에 대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AI가 잘한 일은 화면 속의 닦는 일이었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정해진 보도자료, 답이 매뉴얼 어딘가에 있는 상담, 정답이 있는 분석 과제다. 끝 모습이 글로 주어지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면 AI는 빠르고 꽤 정확하다. 반대로 경계 밖의 과제나 숙련자가 자기 코드베이스의 맥락을 쥐고 있는 일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무엇이 맞는지를 AI가 아니라 사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이 2025년 2월 대화 기록 약 100만 건을 분석한 자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이 AI에게 일을 통째로 맡긴 경우(42.6%)보다 같이 고치고 묻고 다듬은 경우(57.4%)가 더 많았다.
AI가 짓는 일을 거들면
그러면 짓는 일에서는 어떨까. 2024년 영국 UCL의 아닐 도시와 엑서터대의 올리버 하우저는 참가자 약 300명에게 여덟 문장짜리 짧은 소설을 쓰게 했다. 일부에게는 AI가 이야기 아이디어를 하나, 또는 다섯 개까지 건네줬다. 아이디어를 받은 사람의 소설은 평가자들이 보기에 더 참신하고(최대 8.1%) 더 쓸모 있었다. 원래 창의성이 낮던 사람일수록 효과가 커서 창의성 상위권 사람들과 비슷해졌다.
그런데 소설들을 한데 모아 놓자 다른 그림이 나왔다. AI 아이디어 하나를 받은 무리의 소설은 사람끼리 쓴 소설보다 서로 10.7% 더 닮아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나아졌지만 모두가 같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온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사회적 딜레마라고 불렀다. 각자에게는 이득인데 다 같이 그렇게 하면 이야기의 다양성이 줄어든다.
AI가 짓는 일을 거들 수는 있다. 하지만 어디로 지을지를 사람이 정하지 않으면 결과물은 평균 쪽으로 끌려간다.
직접 나눠 보기
글로만 나누면 감이 덜 와서 판을 하나 만들었다. 위의 단추로 일을 고르면 여섯 개의 자에 점수가 매겨지고, 왼쪽 판에 그 일의 자리가 찍힌다. 막대를 직접 움직여 내 일을 재어 볼 수도 있다.
판의 규칙은 단순하다. 가로 위치는 앞의 다섯 자 점수의 평균이고 세로 위치는 여섯째 자 점수다. 'AI가 맡을 수 있는 몫'은 끝 모습, 검증, 절차, 진척 점수가 높을수록 오르고, 몸이 가야 하는 일이면 크게 깎이도록 내가 임의로 만든 장난감 공식이다. 논문에서 가져온 숫자가 아니다. 점수도 내 감으로 매겼으니 다르게 느끼면 막대를 옮기면 된다.
해 보면 칸이 네 개로 갈린다. 오른쪽 아래, 화면 속의 닦는 일은 AI에게 넘기기 좋다. 오른쪽 위, 몸으로 하는 닦는 일은 사람에게는 쉬운데 로봇에게는 아직 어렵다. 욕조가 여기 있다. 왼쪽 위의 아이 돌보기와 새 요리 만들기는 한동안 사람의 일로 남는다. 왼쪽 아래, 화면 속의 짓는 일은 AI와 같이 할 수 있지만 방향은 사람이 잡아야 한다. 이 칸에서는 AI의 몫이 아무리 커져도 '누군가 방향을 정해 줘야 하는 몫'이 줄지 않는다.
시키는 만큼 하는 기계
이 글의 그림과 판도 AI와 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위의 실험들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막대그래프를 그리고, 판의 라벨이 겹치지 않게 고치고, 논문의 숫자가 맞는지 대조하는 일은 AI가 빨랐다. 다만 그건 무엇을 그릴지, 어느 숫자를 믿을지, 어떤 순서로 이야기할지를 정한 다음의 일이었다. 출처를 못 찾은 노트 문장을 어떻게 다룰지, 재현되지 않은 실험을 넣을지 뺄지는 결국 글에 이름을 거는 사람이 정할 문제였다.
AI는 시키는 수준만큼 일한다. 끝 모습을 또렷하게 그려 주면 그 끝까지 빠르게 간다. 끝 모습이 흐릿하면 그럴듯한 평균에 멈춘다. 그러니 AI가 화면 속의 닦는 일을 가져갈수록 사람에게 남는 것은 짓는 일, 그중에서도 맨 앞의 '무엇을 지을지 정하는 일'이다. 욕조 앞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그 생각이 바로 그런 일이다.
노트의 문장은 욕조를 닦으면 창조적인 일로 돌아가고 싶어질 거라고 했다. 이제는 돌아가 앉을 책상 옆에 AI가 하나 더 앉아 있다. 그 AI에게 무엇을 시킬지는 아직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쩌면 욕조를 닦다가 나온다. 그래서 가끔은 욕조를 닦을 일이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노트 속 한 줄에서 출발해 오늘의 생각 한 장에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