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달하는 사람 (4) — 스펙이 아니라 이야기를 판다
좋은 브랜드는 제품의 사양이 아니라 고객의 의미를 팝니다. 같은 물건 위에 이야기를 얹어 값을 바꾸는 법을 이야기해봅니다.
개인의 전달이 브랜드로 커지면 이야기를 파는 일이 됩니다. 좋은 브랜드는 제품의 사양이 아니라 고객의 의미를 팝니다.
그냥 해라
1988년 나이키는 경쟁사에 밀리고 있었습니다. 신발의 기능을 두고 다투는 싸움이었습니다. 나이키가 꺼낸 것은 기술이 아니라 세 단어였습니다. "그냥 해라(Just Do It)." 운동화의 성능이 아니라 망설임을 이겨내는 사람의 태도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발이 아니라 그 태도를 샀습니다. 10년 사이 나이키는 시장의 얼굴이 됐습니다.
도브는 한발 더 나갔습니다. 2004년 조사에서 스스로 아름답다고 답한 여성은 100명 중 두 명뿐이었습니다. 도브는 비누의 성분을 말하는 대신 왜곡된 미의 기준을 이야기했습니다. 몽타주 화가가 여성이 스스로 묘사한 얼굴과 남이 묘사한 얼굴을 각각 그려 나란히 놓았습니다. 남이 본 쪽이 늘 더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아름답습니다." 이 영상은 그해 가장 많이 본 광고가 됐습니다. 파는 것은 비누였지만 이야기한 것은 자존감이었습니다.
생리대 브랜드 올웨이즈는 흡수력을 자랑하는 대신 '여자애처럼'이라는 말을 뒤집었습니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여자애처럼 달려보라'고 하자 우스꽝스럽게 흉내만 냈지만, 아직 어린 소녀에게 같은 주문을 하자 힘껏, 진심으로 달렸습니다. 언제부터 '여자애처럼'이 흉이 됐느냐고 되물은 이 광고는, 모욕처럼 쓰이던 말을 자부심의 언어로 바꿔 세계적 반향을 얻었습니다.
| 브랜드 | 팔던 것 (스펙) | 이야기한 것 (의미) |
|---|---|---|
| 나이키 | 운동화 성능 | "그냥 해라" — 망설임을 이기는 태도 |
| 도브 | 비누 성분 | "당신은 생각보다 아름답다" — 자존감 |
| 해녀의 부엌 | 해산물 | 해녀의 삶과 문화 |
| 올웨이즈 | 생리대 흡수력 | '여자애처럼'을 자부심으로 |
사지 마세요
파타고니아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자사 재킷 사진을 신문에 싣고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고 적었습니다. 옷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환경 비용을 이야기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말린 것입니다.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브랜드의 값을 높였습니다. 광고가 곧바로 매출을 얼마나 올렸는지는 논쟁이 있지만, 브랜드가 무엇을 믿는지를 각인시킨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도 이야기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제주의 한 식당은 해산물을 팔지 않습니다. 공연예술을 전공한 이가 만든 극장식 식당에서, 손님은 해녀가 잡은 해산물을 먹으며 해녀의 삶을 다룬 연극을 보고 현직 해녀와 이야기합니다. 접시에 담긴 것은 수산물이지만 파는 것은 사라져가는 이들의 삶과 문화입니다. 소비가 곧 그 문화를 잇는 일이 됩니다. 이 작은 식당은 관광의 명소가 됐습니다.
이야기는 파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백화점에는 오래된 일화가 있습니다. 취급하지도 않는 타이어를 들고 온 손님에게 매장 직원이 두말없이 환불해줬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도 극적이라 한동안 '지어낸 전설'로 여겨졌는데, 뒷날 회사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고객이 옳다'는 원칙을 진심으로 지키면,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릴 만한 장면이 진짜로 만들어집니다.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한 인테리어 쇼핑몰은 물건을 늘어놓고 팔기부터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자기 집을 꾸민 사진과 이야기를 먼저 보여줍니다. '남의 집 구경'을 실컷 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그 자리에서 사게 하는 것입니다. 파는 티를 내지 않고 이야기를 먼저 건네자, 구매는 뒤따라왔습니다.
같은 물건도 어떤 이야기를 얹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스펙은 비교당하지만 이야기는 대체되지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반대편을 보겠습니다. 실체 없이 이야기만 파는 것이 어떻게 끝나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