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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포장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담은 표지
연재회사 이야기 · 16회

전달하는 사람 (5) — 포장은 실체를 오래 대신하지 못한다

스토리텔링은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가치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실체 없는 포장의 끝,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하는 법을 이야기해봅니다.

· SYSOP · 조회 1

스토리텔링에는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없는 것을 지어내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준비할 게 없다

여러 인증을 거치며 배운 것이 있습니다. 제대로 일해온 팀은 인증을 위해 따로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문서화를 꾸준히 했다면 서류는 이미 있습니다. 테스트를 계속했다면 결과도 이미 있습니다. 한 인증을 앞두고 긴장한 팀원이 물었습니다. "따로 자료를 만들어야 하나요?" 저는 답했습니다. "우리가 해온 대로 보여주면 돼." 실제 심사 당일 예상 못 한 질문이 나왔지만, 평소 쓰던 시스템을 그 자리에서 열어 보였습니다. 준비한 발표보다 실제 업무 과정이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스토리텔링은 있는 가치를 알아볼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지 없는 가치를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피 한 방울의 거짓말

반대편을 보면 선이 분명해집니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은 "피 한 방울로 200가지 검사"라는 이야기로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창업자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거물들을 이사회에 앉혔습니다. 실체는 없었습니다. 자기 장비 대신 남의 장비로 검사하고 있었고, 원리는 영업비밀이라며 감췄습니다. 한 기자의 취재로 거짓이 드러났고 회사는 해산됐으며 창업자는 감옥에 갔습니다. 전기 트럭을 만든다던 회사는 홍보 영상 속 트럭이 사실은 언덕에서 굴러 내려간 것이었음이 드러나 무너졌습니다.

실체 없는 이야기가 무너지는 방식은 놀랄 만큼 닮아 있습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는 '검소한 착한 부자'의 이미지를 앞세워 신뢰를 그러모았지만, 그 이미지 뒤에서 고객이 맡긴 돈을 몰래 끌어다 썼다는 것이 드러나며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을 앞세워 '초호화 섬 축제'를 판 어떤 행사는, 정작 도착한 손님들을 맞은 것이 구호용 천막과 눅눅한 샌드위치였습니다. 화려한 홍보와 초라한 실체의 간극은 그 자리에서 사회관계망을 타고 퍼졌고, 주최자는 감옥에 갔습니다. 포장이 클수록, 그리고 오래 버틸수록,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의 낙차는 커집니다.

포장한 이야기실체결말
피 한 방울로 200가지 검사남의 장비로 검사회사 해산·창업자 유죄
자체 동력 전기 트럭언덕에서 굴린 영상몰락·유죄
발효유가 코로나를 억제세포 실험, 한 제품만유죄 확정·경영권 상실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한 유업체는 자사 발효유가 코로나를 억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는 세포 단계 실험을, 그것도 한 제품만, 학술 행사의 외피를 씌워 사실상 광고로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불매와 제재가 잇따랐고 법원의 유죄가 확정됐으며 결국 창업 가문이 경영권을 잃었습니다. 협찬을 "내 돈 주고 샀다"고 위장한 뒷광고가 드러났을 때, 규제는 개인보다 발주한 브랜드들을 정조준해 과징금을 매겼습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포장은 실체를 잠깐 대신할 수 있어도 오래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대신한 기간이 길수록 무너질 때의 낙차가 큽니다. 가치가 없는데 이야기로 덮으면 그것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사기이고, 사기는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큰 포장이 작은 실체를 오래 대신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을 나타낸 그림

오늘부터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진짜 값을 만들고, 그다음 그것을 듣는 사람의 언어로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무엇을 설명할 일이 있다면, 말하기 전에 30초만 멈춰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이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부터 이야기하면 됩니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며 값을 옮겨 번역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그것을 도착하게 만드는 사람이 드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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