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태가 먼저인가, 쓰임이 먼저인가
책상 위에 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물건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이가 나간 머그컵이고,
하나는 손잡이가 반들반들해진 가위다. 둘 다 특별히 잘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다. 다만 손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 루이스 설리번, 1896
인용은 자주 반쪽만 남는다
설리번이 저 문장을 쓴 문단을 끝까지 읽으면, 그는 건물이 아니라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독수리가 나는 방식, 사과꽃이 피는 방식, 구름이 흐르는 방식. 형태와 쓰임이 갈라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었지 장식을 걷어내라는 지침이 아니었다.
오래 쓰이는 물건의 공통점
- 처음 봤을 때 설명이 필요 없다
- 두 번째 쓸 때 손이 먼저 움직인다
- 고장 났을 때 어디를 열어야 할지 짐작이 된다

만드는 쪽의 언어로 바꾸면
인터페이스도 같다. 화면을 열었을 때 다음에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한 박자 멈춘다면,
그건 사용자가 게으른 게 아니라 형태가 쓰임을 아직 못 따라간 것이다.
def is_obvious(ui):
# 좋은 설계는 설명을 줄이는 게 아니라 설명이 필요 없게 만든다
return ui.next_action_is_guessable and not ui.needs_tooltip
십 년 된 머그컵을 다시 본다. 이가 나간 자리는 입술이 닿지 않는 쪽이다.
아마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쓰는 사람이 그렇게 잡았을 뿐이다.
형태와 쓰임은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서로를 깎는 관계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