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깃발을 아직 들지 못한 사람들
노트에 적힌 낱말은 '독신남(Bachelor)'이었다. 학사 학위인 줄로만 알던 이 말은 원래 자기 깃발을 들지 못하고 남의 깃발 아래에서 싸우던 젊은 기사를 가리켰다. 그 말이 왜 미혼 남성과 대학 졸업자를 함께 뜻하게 됐는지 짚고, 한국과 미국에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과 학위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늘었는지 숫자로 따라갔다. 그다음 AI 이후 대졸 신입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을 두고 누가 무엇에 주목하라고 말하는지, 그 말들의 근거가 얼마나 튼튼한지 나눠 보았다. 오늘의 한 페이지 열여섯 번째 글.

오늘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니 낱말 하나가 적혀 있었다.
독신남(Bachelor)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bachelor를 학사 학위, 그러니까 bachelor's degree의 그 bachelor로만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영어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먼저 bachelor라고 부른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bachelorette다. 한 낱말이 대학 졸업장과 미혼이라는 처지를 함께 뜻한다는 게 신기했다.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남의 깃발 아래에서 싸우던 기사
영어 bachelor는 고대 프랑스어 bacheler에서 왔다. 프랑스어 쪽 기록은 11~12세기까지 올라가고, 영어에 처음 나타나는 건 1300년 무렵이다. 그때 뜻은 '젊은 남자', 그중에서도 '아직 신참인 기사'였다(Etymonline). 그보다 앞의 뿌리는 확실하지 않다. 중세 라틴어 baccalarius가 거론되는데, 이 말은 땅을 갖지 못한 농사꾼을 가리켰다. 소(vacca)에서 왔다는 설, 막대기(baculum)에서 왔다는 설이 있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 초판도 '출처가 의심스럽다'고 적었고, 어원학자 아나톨리 리버만(Anatoly Liberman)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본다(OUP 블로그).
중세 기사에게는 서열이 있었다. 자기 부대를 거느릴 만큼 재산과 경력이 있는 기사는 네모난 깃발(banner)을 들었다. 이런 기사를 기사 배너렛(knight banneret)이라고 불렀다. 그보다 아래의 기사는 끝이 뾰족한 작은 삼각 깃발(pennon)을 들었다. 너무 어리거나 가난해서 자기 사람들을 거느리지 못하고, 다른 기사의 깃발 아래에서 싸우던 기사가 기사 배철러(knight bachelor)였다(Wikipedia: Knight banneret). 전장에서 공을 세운 기사의 삼각 깃발 꼬리를 잘라 네모로 만들어 주며 배너렛으로 올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만 이름난 일화마다 연대기의 기록이 서로 달라서, 세부까지 믿을 이야기는 아니다.
이 '아직 한 사람 몫을 다 갖추지 못한 젊은이'라는 뜻이 14세기에 두 갈래로 퍼졌다. 하나는 대학이다. 대학에서 가장 낮은 학위를 딴 사람, 곧 공부는 마쳤으나 아직 스승(master)이 되지는 못한 사람을 bachelor라고 불렀다. 학사 학위를 뜻하는 baccalaureate가 '월계수 열매(bacca lauri)'에서 왔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건 말 모양이 비슷해서 나중에 끌어다 붙인 민간어원이다(Etymonline: baccalaureate). 다른 하나는 혼인이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젊은 남자를 bachelor라고 불렀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종자는 '사랑에 빠진 활기찬 bacheler'로 소개되는데, 이 대목에서는 '견습 기사'와 '미혼 남자'라는 두 뜻이 겹쳐 읽힌다.
결국 내가 헷갈렸던 두 뜻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 둘 다 '남의 깃발 아래에서 배우는 중인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 기사 작위도 아직 남아 있다. 영국의 나이트 배철러(Knight Bachelor)는 어느 기사단에도 속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기사 작위로, 13세기부터 이어져 지금도 수여된다(Wikipedia: Knight Bachelor).
여자 쪽 말은 훨씬 늦게 생겼다. 미혼 여성을 가리키는 bachelorette는 1896년에 처음 기록됐고, 그 전후로는 bachelor girl이라는 말도 썼다(Etymonline: bachelorette). 그 이전에 미혼 여성을 부르던 말은 spinster였다. 14세기에 '실 잣는 여자'를 뜻하던 말이 영국 문서에서 미혼 여성을 가리키는 법적 호칭으로 쓰였고, 18세기 들어 '혼기를 넘긴 여자'라는 깎아내리는 뜻이 붙었다(Etymonline: spinster). 남자는 '아직 배우는 기사'로, 여자는 '집에서 실 잣는 사람'으로 불렀으니, 같은 처지를 두고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랐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2005년에 혼인 등록부의 bachelor와 spinster 칸을 없애고 single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우리말에도 비슷한 결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미혼(未婚)은 '아직 결혼하지 않음'이다. '아직'이라는 말에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다. 비혼(非婚)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고 우리말샘에 '결혼하지 않음'으로 올라 있다(우리말샘). 1990년대 후반 여성 모임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블로그와 트위터 언급이 2014년 한 해 3천 건 남짓에서 2015년 1만 3천 건으로 크게 늘었다(서울신문). 2018년에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시민 제안을 받아 '미혼' 대신 '비혼'을 쓰자고 권했다(내 손안에 서울). 말이 '아직 하지 않음'에서 '하지 않음'으로 옮겨 가는 동안, 실제 사람들의 삶도 그쪽으로 옮겨 갔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
한국의 30대 초반부터 보자. 인구주택총조사에서 30~34세 남성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1990년에 13.9%였다. 일곱 명 가운데 한 명꼴이다. 2020년에는 65.9%가 됐다. 세 명 가운데 두 명이다. 같은 나이 여성은 5.3%에서 45.9%로 올랐다(서울신문 1992, 1코노미뉴스). 혼자 사는 집도 늘었다. 2000년 전체 가구의 15.5%이던 1인 가구는 2025년 36.6%, 824만 가구가 됐다(e-나라지표).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집은 혼자 사는 집이다.

혼인 건수는 1996년 43만 5천 건이 정점이었고, 2022년 19만 2천 건까지 줄었다. 그런데 최근 조금 돌아섰다. 2024년 22만 2천 건, 2025년 24만 건으로 두 해 연속 늘었다(e-나라지표). 결혼에 대한 생각도 비슷한 곡선을 그렸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결혼은 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2008년 68.0%였다가 2018년 48.1%로 처음 절반 아래로 내려갔고, 2024년 52.5%로 조금 올라왔다. 다만 20대는 39.7%만 그렇다고 답했다(파이낸셜뉴스).
다른 나라도 같은 방향이다. 미국 퓨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1년 미국 40세 가운데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25%로 역대 가장 높았다. 1980년에는 6%였다(Pew Research Center). 일본은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 이른바 생애미혼율이 2020년 남성 28.3%, 여성 17.8%였다.
퓨의 조사에는 학력별 숫자도 있다. 40세 미혼 비율은 고졸 이하가 33%, 학사 이상이 18%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에서도 남성은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결혼할 확률이 낮았다. 결혼은 점점 '선택'이 됐지만,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은 고르게 나뉘어 있지 않다. 여기서 bachelor의 두 뜻이 다시 만난다. 학위와 일자리가 결혼의 문턱과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학위를 가진 사람도 늘었다
이번엔 다른 bachelor, 학위 쪽이다. 한국의 고등학교 졸업자 대학 진학률은 1980년 27.2%, 1990년 33.2%였다.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올라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었다. 2011년부터는 합격자가 아니라 실제 등록한 사람을 기준으로 세기 시작해서 숫자가 내려갔고, 2024년에는 73.6%다(e-나라지표). 기준을 바꾼 뒤로도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넘게 대학에 간다.
OECD의 『한눈에 보는 교육 2026』에서 한국 25~34세 가운데 전문대 이상을 마친 사람은 71.1%로, OECD 평균 47.5%보다 훨씬 높다(Korea Herald). 부모 세대인 55~64세는 35.1%다. 2010년만 해도 같은 비교가 61.4% 대 12.8%였으니, 부모 세대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이 받던 교육을 자녀 세대는 열 명 가운데 예닐곱이 받는다. 25~34세 여성은 79.7%, 남성은 63.4%로 2010년 무렵부터 여성이 앞섰다.
미국도 크게 늘었다. 25세 이상 가운데 학사 이상을 가진 사람은 1940년 4.6%였고, 2023년 38.3%가 됐다(NCES). 세계 전체로 보면 고등교육 재학생이 2000년 약 1억 명에서 2024년 2억 6,900만 명으로 늘었다(The PIE News).

학위가 흔해지면 학위 하나가 주는 값은 줄어든다. OECD의 2026년 한국경제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기 학력보다 낮은 수준의 일을 하는 과잉학력 비율은 31%로 OECD 평균 23%보다 높다(한국경제). 중세의 bachelor가 아직 자기 깃발을 들지 못한 기사였다면, 지금의 bachelor는 깃발을 든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깃발만으로는 눈에 띄기 어려운 기사다.
사다리의 맨 아래 칸이 빠지고 있다
여기에 AI가 들어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22~27세 대졸자의 고용 사정을 꾸준히 발표한다. 2026년 6월 이들의 실업률은 5.7%로, 전체 노동자 4.1%보다 높다. 대학을 나왔는데 학위가 필요 없는 일을 하는 하향취업 비율은 42%다(New York Fed). 전공별로 보면 더 놀랍다. 2024년 자료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의 실업률은 7.8%, 컴퓨터과학은 7.0%였다. 전체 평균 4.2%는 물론이고 미술사(6.7%)나 영양학(4.5%)보다도 높다. 10년 가까이 '가장 안전한 전공'으로 불리던 학과가 실업률 표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같은 표의 다른 칸도 봐야 한다. 컴퓨터 전공자가 일자리를 얻으면 초봉 중위값이 8만 7천~9만 달러로 여전히 가장 높은 축이고, 하향취업 비율도 20% 아래로 낮다. 같은 나이에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의 실업률은 7.2%로 대졸자보다 높고, 중위 임금은 학사가 6만 달러, 고졸이 4만 달러다.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자리라는 사실은 그대로인데, 입구가 좁아졌다.
입구가 좁아진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AI다. 스탠퍼드대학교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에릭 브리뇰프슨(Erik Brynjolfsson) 연구팀은 미국 최대 급여 대행사 ADP의 자료로 이를 따졌다. 2026년 8월에 고친 논문에 따르면, AI에 많이 노출된 직군에서 22~25세 고용은 덜 노출된 직군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을 때보다 19% 적다. 경력이 쌓인 노동자에게서는 이런 격차가 보이지 않았다(Stanford Digital Economy Lab). 연구팀은 이 논문에 '탄광 속 카나리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유독가스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새처럼, 가장 젊은 노동자가 변화를 먼저 겪는다는 뜻이다.
한국도 같은 그림이다. 한국은행이 2026년 8월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15~29세 청년 취업자가 28만 5천 명 줄었는데 그 가운데 94.0%가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줄었다. 같은 기간 50대 취업자는 23만 명 늘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업종의 청년 취업자는 16.6% 줄었다. 대졸 이상 청년의 실업률은 평균 7.0%로 전문대졸 이하 5.4%보다 높아졌다(이투데이). 대학을 더 오래 다닌 사람이 일자리를 더 못 구하는 역전이 생긴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직 채용 공고 가운데 신입을 찾는 공고의 비중이 2022년 53.5%에서 2024년 37.4%로 줄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졸업생 취업률은 2023년 83.8%에서 2025년 72.6%로, 한양대는 81.4%에서 70.3%로 내려갔다(중앙일보).
학생들도 벌써 방향을 틀고 있다. 미국 컴퓨팅연구협회(CRA)의 조사에서 2025년 컴퓨터 관련 학사 과정 신입생은 12.9% 줄었다(CRA Taulbee). 미국 학생정보센터(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는 2026년 봄 컴퓨터과학 전공 학부생이 8.4%, 약 5만 3천 명 줄었다고 집계했다(NSC). 한국에서는 2026학년도 정시 모의지원에서 다섯 대학의 컴퓨터·소프트웨어 계열 지원이 20.6% 줄었고,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은 50.8% 늘었다(세계일보).
다들 무엇에 주목하라고 말하나
이 현실을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처방을 낸다. 말을 많이 모아 놓고 보니 크게 다섯 갈래였다. 누가 말했는지, 무엇을 근거로 말했는지를 같이 적었다.
| 갈래 | 대표 화자 | 하는 말 | 근거의 성격 |
|---|---|---|---|
| 사다리 붕괴론 | 링크드인 애니시 라만, 한국은행 | 신입이 맡던 일을 AI가 가져가 경력의 첫 칸이 사라진다 | 채용 공고·고용 자료. 현상은 튼튼하고 원인이 AI라는 부분은 중간 |
| 현장 기술론 | 제프리 힌턴, 젠슨 황 | 손으로 하는 일, 배관공·전기공이 오래 버틴다 | 전문가의 전망. 데이터는 아님 |
| AI 활용·도메인 결합론 | 앤드루 응, 쇼피파이 토비 뤼트케 | 코딩을 버리지 말고 AI를 쓰는 법과 다른 분야 지식을 함께 갖춰라 | 현장 경험과 사내 정책 |
| 학위 무용론 | 팔란티어 고졸 채용 등 | 대학은 더는 믿을 만한 훈련장이 아니다 | 소수 기업 사례 |
| 신중론 | 예일대 버짓랩, EIG | 아직 AI의 효과는 경제 전체에서 뚜렷하지 않다. 금리 인상이 더 큰 원인이다 | 거시 통계 분석 |
첫 갈래가 가장 많이 들린다. 링크드인의 애니시 라만(Aneesh Raman)은 2025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경력 사다리의 맨 아래 칸이 부러지고 있다'고 썼다. 신입 개발자가 하던 간단한 코딩과 디버깅, 법률·유통 분야의 초급 업무를 AI가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도 AI가 원래 진행되던 '경력직 중심 수시채용'으로의 변화를 더 빠르게 했다고 진단하고, 경력 사다리를 다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이력서 6,500만 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생성형 AI를 들인 기업의 주니어 고용이 6분기 뒤 약 9% 줄었다. 해고가 아니라 덜 뽑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 갈래는 AI를 만든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은 2025년 한 팟캐스트에서 평범한 지적 노동은 AI가 대신할 것이고, 손으로 다루는 일은 오래 걸릴 테니 배관공이 되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Jensen Huang)은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전기공·배관공·목수가 수십만 명 필요하다고 했다(Fortune). 둘 다 귀 기울일 말이지만, 데이터가 아니라 전망이다. 특히 젠슨 황은 데이터센터가 많이 지어질수록 이득을 보는 사람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하다.
세 번째 갈래는 반대 방향에서 온다. 앤드루 응(Andrew Ng)은 '코딩을 배우지 말라'는 말을 역사상 최악의 진로 조언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코딩이 쉬워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코딩을 해야 하고, 다른 분야를 깊이 아는 사람이 AI에서 더 좋은 결과를 뽑아낸다는 것이다. 쇼피파이의 토비 뤼트케(Tobi Lütke)는 2025년 사내 메모에서 사람을 더 뽑아 달라고 하기 전에 그 일을 AI로는 왜 할 수 없는지 먼저 보이라고 했다(TechCrunch). 들어가려는 사람 입장에서 읽으면 'AI를 쓰는 사람이 AI보다 무엇을 더 하는지 보여 달라'는 말이다.
네 번째 갈래는 목소리는 크지만 근거가 가장 얇다. 팔란티어가 대학 대신 고등학교 졸업생을 뽑는 펠로십을 열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지만, 뽑힌 사람은 22명이었다(Fortune). 앞에서 본 것처럼 미국에서는 대졸자가 아직 비대졸자보다 실업률이 낮고 임금이 높다. 한국은 사정이 달라서 대졸 청년의 실업률이 이미 더 높아졌다. '대학은 쓸모없다'는 한 문장으로 두 나라를 함께 말하기는 어렵다.
다섯 번째 갈래는 찬물을 끼얹는다. 예일대 버짓랩은 2025년 10월과 2026년 5월 두 차례 분석에서, 미국 노동시장 전체에서는 아직 AI 때문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변화가 없다고 했다. 다만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Yale Budget Lab). 경제혁신그룹(EIG)에 실린 논문은 신입 일자리가 줄어든 가장 그럴듯한 이유로 40년 만에 가장 가파른 금리 인상을 꼽았다(EIG).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기업이 평범한 감원을 AI 탓으로 포장하는 'AI 워싱'을 지적했다(Fortune). 실제로 뉴욕 연준 자료를 보면 대졸자 실업률이 전체보다 높아진 건 ChatGPT가 나오기 전인 2021년 초부터다.
다섯 갈래를 나란히 놓고 보니, 서로 다투는 것 같아도 겹치는 데가 있다. 신중론조차 '경제 전체'에서는 효과가 아직 작다고 했을 뿐, 가장 젊은 사람들의 첫 일자리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지금 가장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문장은 이 정도일 것 같다. AI는 아직 일자리 전체를 흔들지는 않았지만, 사다리 맨 아래 칸은 이미 흔들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겹친다. 어느 쪽이든 '시키는 일을 정확히 해내는 능력'은 처방에 넣지 않는다. 그건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거의 모든 처방에 같은 것들이 되풀이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는 눈, 결과에 책임을 지는 태도, 사람 사이에서 일을 풀어 가는 힘, 손과 몸으로 현장을 다루는 감각, 그리고 한 분야를 깊이 아는 데서 오는 판단. 한국은행 보고서도 시니어가 AI 시대에 버티는 이유로 업무 맥락을 이해하는 힘과 대인관계, 조직 관리 같은 몸에 밴 지식을 들었다.
깃발 아래에서 배우던 시간
다시 중세의 기사 배철러로 돌아가 본다. 그 젊은 기사가 남의 깃발 아래에서 싸운 건 아직 실력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가 곧 배우는 자리였다. 선배 기사 곁에서 말을 다루고, 무기를 손보고, 전장에서 언제 나아가고 언제 물러설지를 몸으로 익혔다. 그렇게 공을 세우면 깃발의 꼬리가 잘려 네모가 됐다.
지금 흔들리는 게 바로 그 자리다. 신입 사원이 맡던 단순한 일은 사실 일을 배우는 통로였다. 회의록을 정리하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고, 작은 버그를 고치며 큰 코드의 구조를 익혔다. AI가 그 일을 가져가면 기업은 당장 돈을 아끼지만, 10년 뒤의 숙련자를 키울 자리도 함께 사라진다. 아마존 웹서비스의 맷 가먼(Matt Garman)이 주니어를 AI로 대신하겠다는 생각을 두고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말'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다(TechRadar).
그래도 나는 비관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 충분히 좋다면, 어렵겠지만 길은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깃발 아래 자리가 줄어든다면, 스스로 작은 깃발을 먼저 들어 보는 방법도 있다. 남이 시킨 과제가 아니라 내가 고른 문제를 하나 붙잡고, AI를 마음껏 부려 끝까지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알아보는 눈과, 결과를 내 이름으로 책임지는 태도가 자란다. 앞에서 본 처방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던 바로 그 능력이다. 예전에는 경력 몇 년이 지나야 맡던 일을 지금은 혼자서도 해 볼 수 있다. AI는 한쪽 문을 좁혔지만 다른 쪽 문도 열어 두었다.
다시 노트 앞에서
노트의 낱말을 처음 봤을 때 나는 bachelor를 졸업장으로만 읽었다.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말은 처음부터 '아직 자기 깃발을 들지 못했지만 언젠가 들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학위를 막 받은 사람도 그 말 안에서는 아직 가는 길 위에 있는 사람이다.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몇 해 사이에 1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는 소식은 그 학과를 고른 젊은이들에게 무겁게 들릴 것이다. 남들이 가장 안전하다던 길을 골랐는데 그 길이 갑자기 좁아졌으니까. 다만 이번에 숫자를 따라가 보니, 좁아진 건 길의 입구였다. 그 길 끝에 있는 일의 값은 여전히 높았다. 입구가 좁아지면 돌아가는 길을 찾게 되고, 돌아가는 길에서 자기에게 맞는 다른 문을 발견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러니 지금 깃발 없이 서 있는 젊은 친구들이 너무 오래 헤매지 않기를 바란다. 남들이 정해 준 지도보다 자기가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를 먼저 살피고, 그 방향을 빨리 찾아서 그 위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삼각 깃발의 꼬리가 잘려 네모가 되는 날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노트 속 한 줄에서 출발해 오늘의 생각 한 장에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