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sioo
「한 권 엮기」 화면. 위에 「책으로 엮기」, 「EPUB 내려받기」, 「인쇄용 PDF」 단추가 있고, 오른쪽에 「26쪽 · 그림 6장 · 94ms · 점검 문제 0 / 주의 3」이 떠 있다. 가운데 펼침면 왼쪽(8쪽)은 인력거에 앉은 양반과 인력거꾼을 찍은 흑백 사진이 재단선까지 꽉 차 있고, 아래에 캡션 띠가 깔려 있다. 오른쪽(9쪽)은 남산에서 내려다본 1928년 경성 사진이 한 쪽을 통째로 차지한다. 아래에 26쪽짜리 썸네일 줄이 있다
연재진짜 딸깍하는 AI · 32회

책 조판도 딸깍이 될까 — 원고와 사진을 넣고 버튼 하나로 EPUB과 인쇄용 PDF까지, 「운수 좋은 날」로 엮어 본 한 권

글은 AI와 함께 쓰는 시대가 됐지만, 그 글을 책으로 엮는 조판은 여전히 인디자인이나 LaTeX를 배워야 하는 일이다. 브라우저에서 원고와 사진을 넣고 버튼 하나를 누르면 쪽을 나누고, 그림 자리를 잡고, 차례와 찾아보기를 만들어 EPUB과 인쇄용 PDF로 내보내는 조판 도구 「한 권 엮기」를 만들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에 1910~20년대 서울 사진 여섯 장을 넣어 신국판 26쪽으로 엮었고, EPUB은 공식 검사기 epubcheck를 오류 0건으로 통과했다. 설정 노트로 인물·배경의 붕괴를 잡는 장치도 붙여, AI 두 개에게 쓰게 한 뒷이야기에서 원작과 어긋난 대목을 찾아냈다.

· SYSOP · 조회 6

「한 권 엮기」 화면. 위에 「책으로 엮기」, 「EPUB 내려받기」, 「인쇄용 PDF」 단추가 있고, 오른쪽에 「26쪽 · 그림 6장 · 94ms · 점검 문제 0 / 주의 3」이 떠 있다. 가운데 펼침면 왼쪽(8쪽)은 인력거에 앉은 양반과 인력거꾼을 찍은 흑백 사진이 재단선까지 꽉 차 있고, 아래에 캡션 띠가 깔려 있다. 오른쪽(9쪽)은 남산에서 내려다본 1928년 경성 사진이 한 쪽을 통째로 차지한다. 아래에 26쪽짜리 썸네일 줄이 있다

요즘은 글을 혼자 쓰지 않는다. AI와 대화하면서 에세이 한 편을 써 나가기도 하고, 소설의 인물과 배경을 미리 적어 두고 그걸 AI에게 넘겨 이야기가 앞뒤로 어긋나지 않게 쓰기도 한다. 쓰는 일은 분명히 쉬워졌다.

그런데 그 글을 책으로 엮는 일은 그대로다. 글을 쪽에 앉히고, 사진이 쪽 끝에 걸리면 어디로 보낼지 정하고, 장은 오른쪽 쪽에서 시작하게 하고, 차례에 쪽 번호를 채우는 일. 출판사에서는 이걸 조판이라고 부르고, 인디자인을 다루는 사람이 한다. 논문을 쓰는 사람은 LaTeX이나 오버리프를 배우고, 소설을 쓰는 사람은 스크리브너에서 원고를 정리한 뒤 다시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긴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는 책은 더 까다롭다. 사진 하나가 들어갈 자리를 잘못 잡으면 그 뒤 수십 쪽이 다 밀린다.

그래서 이번 회에는 그걸 딸깍으로 하는 도구를 만들어 봤다. 원고와 사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책 한 권이 나오는 도구. 그 책을 전자책(EPUB)으로도, 인쇄소에 보낼 PDF로도 바로 내보내는 데까지.

무엇을 하려 했나

  1. 책을 짜는 도구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짧게 정리한다. 조판 프로그램, 전자책 표준, 그리고 AI 글쓰기 도구의 설정 저장 장치까지.
  2. 조판이 왜 어려운지, 그중 어떤 부분을 프로그램에 맡길 수 있는지 나눠 본다.
  3. 브라우저 하나로 도는 조판 도구 「한 권 엮기」를 만든다. 서버도, 설치도 없이.
  4. 저작권이 끝난 국내 단편 하나에 사진을 섞어 실제로 한 권을 엮는다. 고른 작품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5. 나온 EPUB을 공식 검사기에 넣고, PDF가 독립출판(POD) 규격에 맞는지 따진다.
  6. 설정 노트가 정말로 「안전장치」 노릇을 하는지 AI가 쓴 뒷이야기로 시험한다.

조사는 AI 에이전트에게 맡겼다. 공식 문서와 논문, 법령, 회사 발표만 출처로 쓰게 했고, 확인하지 못한 연도는 미확인으로 남기게 했다.

책을 짜는 도구 46년

책을 짜는 도구 46년 연표. 조판 프로그램(회색): 1978 TeX(크누스), 1981 크누스·플라스 줄바꿈 논문, 1985 LaTeX 2.09·페이지메이커, 1989 아래아한글 1.0, 1999 인디자인 1.0. 글쓰기 도구·웹 조판(파랑): 2006 Pandoc, 2007 스크리브너 1.0·EPUB 2, 2013 Vellum, 2014 Overleaf 베타, 2018 Paged.js. 전자책 표준(초록): 2011 EPUB 3.0, 2023 Typst·EPUB 3.3 W3C 권고. AI 설정 장치(주황): 2021 NovelAI 서비스(로어북), 2024 Sudowrite Story Bible 2

조판 프로그램은 교정쇄에 실망한 데서 나왔다. 1977년 도널드 크누스는 자기 책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2판의 교정쇄를 받아 보고 그 품질에 실망해, 직접 조판 프로그램을 짜기로 했다. 그게 1978년의 TeX이다. 1981년 크누스와 플라스가 낸 줄바꿈 논문은 문단을 한 줄씩 채우지 않고 문단 전체를 한 번에 보고 가장 고른 줄바꿈 자리를 찾는다. 지금도 좋은 조판의 기준으로 꼽힌다. 1985년 램포트가 TeX 위에 LaTeX 2.09를 얹으면서 논문 쓰는 사람들의 표준이 됐다.

같은 해 페이지메이커가 나오면서 「데스크톱 퍼블리싱」이라는 말이 생겼고, 1999년 인디자인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1989년 아래아한글이 나와 많은 사람에게 문서를 꾸미는 첫 도구가 됐다.

2000년대 이후로는 쓰는 도구와 짜는 도구가 갈라졌다. 2006년 Pandoc은 마크다운 원고 하나를 여러 형식으로 바꿔 줬고, 2007년 스크리브너는 장편을 조각조각 쓰고 다시 엮는 작가용 도구가 됐다. 같은 해 전자책 표준 EPUB 2가 나왔다. 2011년 EPUB 3.0, 2023년 EPUB 3.3이 W3C 권고가 되면서 전자책은 사실상 「책 모양으로 묶은 웹 페이지」가 됐다. 그 뒤로 Vellum(2013) 같은 소설가용 조판 앱, 오버리프(2014 베타) 같은 웹 LaTeX, 브라우저 CSS로 인쇄용 쪽을 짜는 Paged.js(2018), 새 조판 언어 Typst(2023)가 이어졌다.

AI 글쓰기 도구는 「설정 저장」에서 서로 닮아 간다. NovelAI의 로어북은 본문에 인물 이름 같은 키가 나오면 그 인물의 설정을 AI에게 몰래 같이 넘긴다. Novelcrafter의 코덱스는 인물마다 별칭을 등록해 원고 어디에 나오는지 추적하고, 그 항목을 AI에게 「항상 / 나올 때만 / 안 보냄」 중 어떻게 넘길지 정하게 한다. Sudowrite는 2024년 Story Bible 2에서 인물 수 제한을 풀고, 관련 있는 설정만 골라 넘기는 기능을 붙였다(회사 설명). 셋 다 같은 생각이다. 설정은 원고 밖에 두고, 지금 쓰는 장면에 필요한 것만 AI에게 끼워 준다. 장편에서 인물이 갑자기 나이를 먹거나 집 모양이 바뀌는 「설정 붕괴」를 막는 장치다.

그런데 이 설정 노트는 대개 쓰는 단계에서 끝난다. 책으로 엮는 단계에서 원고 전체를 노트와 한 번 더 대조해 주는 도구는 찾기 어려웠다. 이번에 만든 도구에 그 일을 같이 맡겼다.

조판이 어려운 자리

글을 쪽에 앉히는 일은 생각보다 결정할 게 많다.

  • 쪽 끝에서 문단을 어디서 자르나. 아무 데서나 자르면 쪽 맨 끝에 한 줄만 남거나(외톨이 줄), 다음 쪽 맨 위에 한 줄만 넘어간다. 책에서는 둘 다 피한다.
  • 사진이 안 들어가면 어디로 보내나. 쪽에 남은 자리보다 사진이 크면 다음 쪽 머리로 미루고, 그 빈자리는 사진 뒤에 올 글로 채운다. LaTeX에서 「플로트」라고 부르는 처리다. 이걸 손으로 하면 사진 하나 넣을 때마다 뒤쪽이 전부 밀린다.
  • 한글은 어디서 줄을 바꾸나. W3C의 한글 조판 요구사항(klreq)은 한글 줄바꿈을 글자 단위와 어절 단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책에서는 대개 어절 단위로 바꾸고 양쪽을 맞춘다. 여는 괄호가 줄 끝에, 마침표나 닫는 괄호가 줄 머리에 오지 않게 하는 금칙도 있다.
  • 인쇄소가 원하는 모양은 따로 있다. 판형(책 크기), 사진이 종이 끝까지 닿으면 사방 3mm씩 더 그리는 재단 여유, 쪽수에 따라 달라지는 책등 두께.
  • 책에는 본문 말고도 쪽이 있다. 반표제지, 표제지, 판권면, 차례, 찾아보기. 차례와 찾아보기는 쪽을 다 나눈 뒤에야 번호를 알 수 있다.

이 중 앞의 넷은 규칙으로 쓸 수 있다. 사람이 고르는 건 「어떤 책처럼 보일까」 하나뿐이다. 그래서 도구는 판짜임 세 가지(고전 문고, 사진 에세이, 논문·교재)를 미리 만들어 두고, 하나를 고르면 판형·서체·여백·행간·그림 크기가 한꺼번에 바뀌게 했다.

그래서 만든 것: 「한 권 엮기」

「한 권 엮기」가 하는 일. 위 줄은 사람이 넣는 것 넷이다. ① 원고(한 줄이 한 문단, # 장, ## 소제목, *** 장면 바꿈, 그림 줄), ② 그림(끌어다 놓으면 이름으로 원고와 연결, "쪽"은 한 쪽 통째, "전면"은 재단선 밖까지), ③ 설정 노트(@인물 이름 | 별칭 | 나이 | 아님: 쓰면 안 되는 말), ④ 짜임 고르기(고전 문고·사진 에세이·논문·교재). 아래 줄은 ⑤ 쪽 나누기(문단 자르기, 그림 미루기, 앞뒤 붙이)와 ⑥ 점검 → 내보내기(그림 해상도, 문장부호 섞임, 설정 노트 대조, 책등 폭 → EPUB 3과 인쇄용 PDF). 맨 아래에 「원고나 설정을 고치면 다시 누른다. 서버로 나가는 것은 없다 — 글꼴만 CDN에서 받는다」

HTML 파일 하나다. 브라우저에서 열면 바로 돈다. 원고와 사진은 브라우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글꼴(본명조·나눔명조·고운바탕·본고딕)만 공개 CDN에서 받는다.

원고는 마크다운을 조금 줄인 꼴이다. 한 줄이 한 문단이고, #은 장, ##는 소제목, ***는 장면 바꿈, ![캡션] 뒤에 괄호로 파일 이름을 적으면 그림이다. 그림 뒤에 "쪽"을 붙이면 한 쪽을 통째로 쓰고, "전면"을 붙이면 재단선 밖까지 꽉 채운다.

쪽 나누기는 브라우저가 실제로 글자를 그려 보면서 한다. 신국판(152×225mm) 본문 상자를 mm 단위로 만들고 문단을 하나씩 넣는다. 넘치면 그 문단을 어절 단위로 이분 탐색해 이 쪽에 몇 어절까지 들어가는지 찾는다. 들어간 부분이 한 줄뿐이면 문단째 다음 쪽으로 넘기고, 다음 쪽으로 넘어갈 부분이 한 줄뿐이면 한 줄을 더 넘긴다. 자른 문단의 앞쪽 마지막 줄은 양끝을 맞추고, 뒤쪽 첫 줄은 들여 쓰지 않는다.

그림은 미룬다. 쪽에 자리가 없으면 다음 쪽 머리로 보내고, 그 사이는 그림 뒤의 글로 채운다. 순서는 지킨다. 그림이 둘 밀려 있으면 둘째는 첫째 뒤에 나온다. 「쪽」 그림은 다음 빈 쪽 하나를 통째로 받는다.

앞붙이와 뒷붙이는 두 번 계산한다. 반표제지, 표제지, 판권면, 차례를 먼저 앉히고 본문을 나눈 다음, 장이 시작한 쪽 번호를 차례에 채운다. 장은 오른쪽(홀수) 쪽에서 시작하고, 앞이 홀수 쪽에서 끝나면 빈 쪽을 하나 끼운다. 설정 노트의 항목은 책 끝 찾아보기가 되고, 각 항목이 나오는 쪽 번호가 자동으로 붙는다. 마지막으로 전체 쪽수를 2쪽, 4쪽, 16쪽 단위 중 고른 단위로 맞춘다.

EPUB은 같은 원고에서 따로 만든다. 종이책은 쪽이 고정돼 있지만 전자책은 화면에 따라 글이 다시 흐른다. 그래서 EPUB에는 쪽을 나누기 전 원고를 장별 XHTML로 넣고, 차례(nav)와 표지, 판권, 찾아보기를 붙여 EPUB 3으로 묶는다. 그리고 하나를 더 넣었다. 종이책에서 쪽이 바뀌는 자리마다 「여기서 12쪽 시작」이라는 표식(epub:type="pagebreak")을 심었다. 문단 중간에서 쪽이 바뀌면 그 글자 위치에 넣는다. 종이책을 들고 수업하는 사람과 전자책을 든 사람이 같은 쪽을 펼 수 있게 하는 장치이고, 접근성 메타데이터에서는 이걸 printPageNumbers라고 부른다.

인쇄용 PDF는 브라우저 인쇄로 뽑는다. 화면에 그린 쪽을 그대로 @page 크기에 맞춰 인쇄한다. 「재단 여유 3mm」를 고르면 쪽이 사방으로 3mm씩 커지고 전면 사진은 그 바깥까지 번진다. 「재단선」까지 고르면 네 귀퉁이에 자를 자리를 표시한다.

예제: 「운수 좋은 날」

예제 원고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1924년 6월 《개벽》 48호에 발표됐다. 현진건은 1943년에 세상을 떠났고, 당시 저작권법(1957년 제정, 사후 30년)으로 1970년대에 보호기간이 끝났다. 1987년 개정법이 보호기간을 늘리면서도 이미 끝난 권리는 되살리지 않았으니 지금은 퍼블릭 도메인이다. 본문은 위키문헌에 올라 있는 현대 표기본을 그대로 썼다. 손댄 곳은 둘이다. 위키 원문의 장면 구분 표시를 ***로 바꿨고, 김 첨지의 속말을 묶은 <…>는 HTML 태그로 읽히지 않도록 〈…〉로 바꿨다. 영문판 책을 위해 이 원문을 AI 에이전트에게 줄 대 줄로 영어로 옮기게 했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는 책을 시험하려고 1910~20년대 서울 사진 여섯 장을 넣었다. 모두 위키미디어 공용에 퍼블릭 도메인으로 올라 있는 사진이다. 인력거에 앉은 양반과 인력거꾼(미국 의회도서관), 남산에서 내려다본 1928년 경성(서울역사아카이브), 남대문과 전찻길 사진엽서(뉴욕공공도서관), 서울의 전차와 신발 시장(의회도서관), 1920년대 금청교(『경성부사』)다. 소설 장면을 찍은 사진은 아니다. 비 오는 1920년대 경성 거리를 찍은 퍼블릭 도메인 사진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 무렵 거리를 보여 주는 자료라고 판권면에 밝혔다.

결과는 신국판 26쪽이다. 반표제지와 표제지, 판권, 차례 다음 7쪽에서 소설이 시작하고, 8쪽에 인력거 사진이 재단선까지 꽉 차고, 9쪽에 남산 사진이 한 쪽을 차지한다. 소설은 21쪽에서 끝난다. 다음 장이 오른쪽 쪽에서 시작하도록 22쪽을 비우고 23쪽에 작품 해설, 25쪽에 찾아보기가 오며, 마지막에 2쪽 단위로 맞춘 빈 쪽 하나가 붙는다. 쪽을 나누는 데 노트북 브라우저에서 94ms 걸렸다.

「한 권 엮기」의 점검 탭과 12–13쪽 펼침면. 왼쪽 점검 목록에는 「주의 rickshaw.jpg — 인쇄 폭 158mm에서 247dpi」, 나머지 다섯 사진은 「확인 … 301~341dpi」, 「주의 말줄임표가 두 가지로 섞여 있음: 「...」 3곳, 「…」 9곳」, 「주의 줄표가 섞여 있음: 「 - 」 1곳, 「—」 8곳」, 「확인 설정 노트 8항목 대조」, 「확인 총 26쪽(빈 쪽 맞춤 1쪽)」, 「확인 책등 2.6mm」가 있다. 오른쪽 12쪽 맨 위에는 남대문과 전찻길 사진엽서가 앉아 있고 그 아래로 본문이 이어진다. 13쪽은 본문만 있다

12쪽이 그림 미루기를 보여 준다. 남대문 사진은 원고에서 11쪽 끝 무렵 문단 뒤에 있었다. 그런데 11쪽에 남은 자리가 사진보다 작아서 12쪽 머리로 밀렸고, 11쪽의 빈자리는 사진 뒤에 오던 글이 채웠다.

같은 원고를 짜임만 바꿔 다시 엮으면 이렇게 된다.

같은 원고, 같은 사진을 짜임 세 가지로 엮은 같은 펼침면. 왼쪽 「고전 문고 · 신국판 152×225 · 26쪽」은 명조 본문에 넓은 행간이다. 가운데 「사진 에세이 · 정사각 200×200 · 22쪽」은 고운바탕 본문에 사진이 판면 폭을 꽉 채운다. 오른쪽 「논문·교재 · B5 · 18쪽」은 들여쓰기 없는 본문에 「그림 3」처럼 번호 붙은 그림이 들어간다

단추 하나로 26쪽짜리 문고가 22쪽짜리 사진책이 되고, 18쪽짜리 교재가 된다. 쪽 번호, 차례, 찾아보기는 매번 다시 계산된다.

점검이 잡은 것

조판 프로그램은 대개 「시키는 대로」 짠다. 이번 도구에는 내보내기 전에 원고를 한 번 의심하는 점검을 붙였다. 「운수 좋은 날」에서 걸린 것은 셋이다.

  • 사진 해상도. 인쇄는 실제 찍힐 크기에서 300dpi 이상을 권한다. 인력거 사진은 원본이 가로 1,536픽셀인데, 재단 여유까지 158mm 폭으로 펼치면 247dpi밖에 안 된다. 화면에서는 멀쩡해 보여서 사람이 놓치기 쉬운 문제다. 같은 사진도 본문 폭(97mm)에 앉히면 400dpi가 넘는다.
  • 말줄임표가 두 가지. 「...」(마침표 셋)이 3곳, 「…」(말줄임표 한 글자)가 9곳이다.
  • 줄표가 두 가지. 「 - 」(하이픈)이 1곳, 「—」(줄표)가 8곳이다.

뒤의 둘은 위키문헌 입력본의 흔적이다. 원작의 잘못이 아니라 디지털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섞인 것이다. 일부러 고치지 않고 넣어서 점검기가 잡는지 봤다. 종이책 교정에서 가장 흔히 놓치는 것이 이런 기호 통일이다.

설정 노트는 안전장치가 될까

설정 노트는 이렇게 적는다.

@인물 김 첨지 | 직업: 인력거꾼 | 사는 곳: 동소문 안
@인물 개똥이 | 나이: 세 살 | 관계: 김 첨지의 아들
@인물 치삼이 | 별칭: 치삼 | 관계: 김 첨지의 친구
@장소 김 첨지의 집 | 별칭: 행랑방 | 모습: 셋집 행랑방 한 간, 대문 | 아님: 사립문, 초가

점검기는 원고를 이 노트와 대조한다. 노트에 없는 표기(「김첨지」처럼 띄어쓰기만 다른 이름), 노트와 다른 나이(「개똥이」 근처에 「네 살」), 노트가 막아 둔 말(「아님:」에 적은 낱말)을 찾는다. 노트는 「AI에게 넘길 설정 꾸러미」로 복사할 수도 있다.

이게 정말 쓸모가 있는지 보려고 실험을 하나 했다. 새로 띄운 AI 에이전트 둘에게 「운수 좋은 날」 다음 날 아침, 김 첨지가 다시 인력거를 끌고 나서는 장면을 1,200~1,600자로 쓰게 했다. A에게는 작품 이름과 장면만 줬고, B에게는 설정 노트 앞 일곱 줄(집 항목은 아직 없었다)을 같이 주면서 노트에 없는 설정을 새로 만들면 따로 적으라고 했다.

두 장면 다 잘 썼다. 개똥이는 세 살로 남았고, 치삼이는 친구로 나왔고, 식은 설렁탕도 나왔다. 그런데 둘 다 김 첨지네 집에 「사립문」을 달았다. 원작의 집은 셋집 행랑방 한 간이고, 김 첨지는 「대문」에 발을 들인다. 사립문은 잡목 가지로 엮은 시골 초가의 문이다. 동소문 안 셋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A (노트 없이)B (노트 7줄과 함께)
인물 이름·나이·관계원작과 맞음원작과 맞음
김 첨지 집의 문사립문사립문
AI가 스스로 밝힌 새 설정없음(요청하지 않음)9가지. 그중 「김 첨지 집에 사립문이 있음」
점검기 (집 항목 없는 노트)못 잡음못 잡음
점검기 (집 항목 + 「아님: 사립문」 추가)문제 1건: 「사립문」문제 1건: 「사립문」

정리하면 셋이다. 첫째, 설정 노트를 줘도 노트에 없는 것은 AI가 지어낸다. 둘 다 똑같은 낱말을 지어낸 걸 보면, 원작의 맥락보다 「가난한 집 = 사립문」이라는 흔한 그림이 이긴 것이다. 둘째, 노트를 받은 쪽은 자기가 무엇을 지어냈는지 적어 냈다. 사람이 그 목록 아홉 줄을 읽으면 사립문을 잡을 수 있다. 셋째, 규칙 점검기는 노트에 적힌 만큼만 잡는다. 집 모양을 노트에 적고 「아님: 사립문」을 넣자 두 원고 모두에서 바로 잡혔다.

그래서 이 도구에서 설정 노트는 두 방향으로 쓴다. 쓰기 전에는 AI에게 넘기는 꾸러미로, 엮기 전에는 원고를 대조하는 체크리스트로. 그리고 AI가 「새로 만든 설정」으로 적어 낸 것 가운데 남길 것은 다시 노트에 올린다.

나온 파일은 정말 쓸 수 있나

EPUB. W3C가 관리하는 공식 적합성 검사기 EPUBCheck 5.4.0(2026년 9월판)에 넣었다. 한국어판과 영문판 모두 오류 0, 경고 0이다. 한국어판 EPUB은 939KB이고, 장별 XHTML 둘, 사진 여섯 장, 표지, 판권, 찾아보기, 차례, 종이책 쪽 번호 목록(page-list)이 들어 있다. W3C는 대부분의 서점이 EPUBCheck를 통과하지 못한 파일을 받지 않는다고 적어 둔다.

인쇄용 PDF. 152.0×225.0mm 26쪽, 1.4MB다. 글꼴은 본문 명조와 캡션 고딕이 모두 PDF 안에 들어가 있다(쓴 글자만 담는 부분 글꼴). POD 업체가 가장 먼저 보는 조건이다.

독립출판까지 남은 일은 업체 규격 맞추기다. 국내 POD 가운데 부크크의 책 만들기 화면을 확인해 보면 이렇다.

  • 판형은 46판 127×188, A5 148×210, B5 182×257, A4 210×297mm 넷이다. 이번 예제의 신국판은 목록에 없다. 도구에서 판형만 A5로 바꿔 다시 엮으면 된다.
  • 재단 여유: 이미지나 배경이 쪽 끝까지 닿으면 사방 3mm씩 키워 작업하고, 중요한 내용은 끝선에서 10~15mm 안쪽에 두라고 한다. 이번 책은 인력거 사진이 쪽 끝까지 닿으니 「재단 여유 3mm」로 뽑아야 한다.
  • 쪽수는 977쪽까지다. 계산기는 50쪽 미만을 50쪽으로 친다.
  • 책등은 공식 식을 공개하지 않는다. 계산기 출력값에 맞춰 보면 미색모조 100g에서 「쪽수 × 0.055mm + 1.6mm」에 가깝다(우리 추정). 도구의 종이 목록에 이 근사식을 넣어 뒀다. 26쪽이면 50쪽으로 쳐서 약 4.4mm다.
  • ISBN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행자(출판사) 번호를 받은 쪽이 신청하는 구조라, 개인은 보통 출판사 신고를 하거나 POD 플랫폼 명의로 받는다. 종이책(발행형태기호 3)과 전자책(5)은 번호가 다르다.
  • 납본: 도서관법 제21조에 따라 발행 후 30일 안에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해야 하는데, 부크크와 교보 바로출판은 플랫폼이 대신 진행한다.

직접 돌려 보기

아래가 그 도구다. 원고 칸의 글을 고치거나 판형·서체 칸에서 짜임을 바꾸고 「책으로 엮기」를 누르면 다시 엮인다. 점검 칸에서 문제와 주의를 볼 수 있다.

「한 권 엮기」. 원고·설정 노트·그림을 넣고 「책으로 엮기」를 누르면 쪽을 나눈다. 글 안 액자에서는 내려받기가 막혀 있다.

EPUB과 PDF를 내려받으려면 새 창에서 열기로 열면 된다. 자기 원고를 넣으려면 원고 칸을 지우고 붙여 넣은 뒤, 그림 칸에 사진을 끌어다 놓으면 된다. 원고와 사진은 브라우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어디서 틀렸나

  • 장면 바꿈마다 쪽이 넘어갔다. 장면 바꿈 표시는 쪽 맨 끝에 혼자 남지 않도록 「아래에 두 줄 자리가 있을 때만」 놓게 했다. 그런데 남은 자리를 scrollHeight로 쟀더니, 이 값은 내용이 상자보다 짧으면 상자 높이를 그대로 돌려준다. 남은 자리가 늘 0으로 계산돼 장면이 바뀔 때마다 쪽이 넘어갔고, 11쪽이 네 줄만 찬 채 비었다. 썸네일을 한눈에 보고서야 알았다. 마지막 요소의 아래 끝 위치로 재도록 고쳤다.
  • 위키 원문의 장면 구분 표시가 본문에 그대로 찍혔다. 원문은 장면 사이를 <center>🙝🙟</center>로 나누는데, 속말 괄호를 바꾸는 규칙이 이걸 「〈center〉」라는 글자로 바꿔 버렸다. 10쪽 한가운데에 그대로 인쇄된 걸 보고 장면 바꿈으로 고쳤다.
  • 곧은따옴표 4개를 잘못 찾았다. 점검기가 그림 줄의 "전면", "쪽" 같은 지시어까지 본문으로 세어 「따옴표가 섞여 있다」고 했다. 그림 줄은 점검에서 뺐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림 해상도 점검까지 사라졌다. 그림 점검은 원고 전체를 보도록 되돌렸다.
  • EPUB의 종이책 쪽 표식이 절반만 박혔다. 처음에는 문단 중간에서 쪽이 바뀐 자리만 찾았다. 새 문단으로 시작하는 쪽은 표식이 없었다. 쪽 나누기 단계에서 문단마다 원고상의 위치를 달아 두는 방식으로 바꿨다.
  • 느슨한 줄이 남는다. 「일어나기는새로」처럼 원문에 붙어 있는 긴 어절이 다음 줄로 넘어가면, 앞줄은 낱말 사이가 눈에 띄게 벌어진다. 브라우저는 한 줄씩 채우는 방식이라 크누스·플라스처럼 문단 전체를 보고 고르게 나누지 않는다. 고치지 못했다.
  • 쪽 아래가 몇 줄 비는 곳이 있다. 외톨이 줄 규칙과 장면 바꿈 규칙을 지키느라 문단을 다음 쪽으로 넘기면 앞 쪽 바닥에 두세 줄 빈자리가 남는다. 조판 전문가라면 행간을 미세하게 늘리거나 앞 쪽 문단을 한 줄 줄여 바닥을 맞추겠지만, 이 도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딸깍이 되는가

조판에서 사람이 오래 붙잡고 있는 일은 대부분 규칙이 정해진 일이다. 외톨이 줄을 피하고, 그림을 미루고, 장을 오른쪽에서 시작하고, 차례 번호를 채우고, 사진 해상도를 확인하는 일. 규칙은 프로그램이 지키고, 사람은 「어떤 책으로 보일까」라는 짜임 하나만 고르면 된다.

AI가 글쓰기를 쉽게 만든 만큼, 원고가 설정과 어긋날 가능성도 커졌다. 이번 실험에서 두 AI는 똑같이 사립문을 지어냈다. 그걸 잡은 건 AI가 아니라, 노트에 적어 둔 한 줄과 그 한 줄로 원고 전체를 훑는 단순한 점검이었다. AI가 만들고, 검증기가 의심한다.

따라 하려면

  • 원고는 처음부터 구조로 써라. 장, 소제목, 그림 자리를 표시해 두면 조판 도구가 무엇이든 옮겨 가기 쉽다. 마크다운이면 충분하다.
  • 사진은 실제로 찍힐 크기로 해상도를 따져라. 화면에서 선명한 사진도 종이 폭에 맞추면 300dpi가 안 될 수 있다. 「가로 픽셀 ÷ (인쇄 폭 mm ÷ 25.4)」로 계산하면 된다.
  • 설정 노트에는 「아님」을 적어라. 인물 이름과 나이만큼 중요한 게 「이 세계에 없는 것」이다. AI는 빈칸을 흔한 그림으로 채운다.
  • AI에게 새로 만든 설정을 따로 적게 해라. 지어낸 걸 막을 수는 없어도 찾을 수는 있다.
  • EPUB은 EPUBCheck로, PDF는 업체 규격으로 확인해라. 서점은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파일을 받지 않는다. 판형과 재단 여유는 업체마다 다르니 쓸 업체의 값으로 다시 엮어라.

못 하는 것

  • 표지는 만들지 않는다. 책등 폭과 펼침면 크기만 계산해 준다. 앞·뒤표지 디자인은 따로 해야 한다.
  • EPUB 2는 내보내지 않는다. 부크크 안내에 따르면 알라딘은 EPUB 3.0을 받지 않고, 예스24는 EPUB 2.0이나 PDF를 권한다(부크크가 전한 내용이고, 두 서점의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 도구는 EPUB 3만 낸다.
  • 각주, 표, 수식이 없다. 논문·교재 짜임은 「번호 붙은 그림」까지다. 수식이 많은 원고라면 아직 LaTeX이나 Typst가 낫다.
  • 인쇄 색상 관리가 없다. PDF는 화면용 RGB다. 컬러 사진책을 오프셋으로 찍으려면 CMYK 변환과 색 교정이 따로 필요하다. 흑백 POD에는 문제가 없다.
  • 사람 눈을 대신하지 않는다. 줄 사이가 벌어진 곳, 쪽 바닥이 빈 곳, 사진이 장면과 어긋난 곳은 결국 펼쳐 보고 고쳐야 한다.
  • 실물 책은 아직 찍지 않았다. PDF까지 만들었고, POD에 실제로 올려 받아 보지는 않았다.

글은 점점 쉽게 쓰게 됐다. 이제 그 글을 책으로 엮는 일도 버튼 하나 뒤로 갈 수 있다. 남는 일은 「어떤 책이었으면 좋겠나」를 정하는 일과, 노트에 「이 세계에 없는 것」을 적어 두는 일이다.

재미있게 읽었다면 꼭 의견을 달아달라.

출처

이 연재를 처음부터 보시려면 진짜 딸깍하는 AI 로 가시오.

한마디 0

아직 한마디도 없소. 먼저 보태시오.

한마디 보태려면 들어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