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가까운 쪽이 내 땅
노트에 적힌 낱말은 '국경'이었다. 지금도 선 위에서 이어지는 분쟁들을 지도에 찍어 보고, 산과 강이 국경을 어떻게 끌어당기는지, 휴전선 위의 나라가 육지와 바다에서 맞닥뜨리는 일들, 국경을 지키는 장치와 거기 들어온 AI를 따라간다. 끝으로 식민지 시대에 자로 그은 아프리카 국경을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으로 다시 그어 본다. 오늘의 한 페이지 여섯 번째 글.

오늘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니 낱말 하나가 적혀 있었다.
국경
세 번째 글에서 마블과 DC 히어로 사이에 선을 그은 적이 있다. 그때 선은 점수를 매긴 점들 사이를 가르는 수학이었다. 오늘의 선은 다르다. 이 선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실제로 죽고, 협상하고, 철책을 세운다. 오늘은 그 선을 따라가 보려 한다. 지금도 선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 산과 강이 선을 끌어당기는 방식, 휴전선 위에 사는 우리, 선을 지키는 장치와 기계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그을 수 있다면 어떻게 그었을까 하는 상상까지.
선이 늘어나는 세계
국경은 생각보다 젊은 발명품이다. 흔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근대 주권국가 체제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30년 전쟁을 끝낸 이 조약에서 각 나라가 제 영토와 주민에 대해 배타적인 주권을 갖는다는 원칙이 자리 잡았다. 그전의 경계는 대개 선이 아니라 띠였다. 영주의 힘이 닿는 데까지가 영지였고, 그 끝은 흐릿했다.
지금 지구의 육지에는 그 선이 약 28만 km 깔려 있다. 미국 CIA 월드팩트북이 공유 국경을 두 번 세지 않고 더한 값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14개 나라와 국경을 맞댄다.
선이 굵어지는 속도는 더 놀랍다. 국경 장벽을 연구해 온 캐나다 퀘벡대의 엘리자베트 발레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세계의 국경 장벽이 15개였는데, 2017년 무렵엔 70개 가까이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냉전이 끝나면 벽이 사라질 거라던 예상과 반대로 흘러갔다.
지금도 선 위에서
2026년 10월 초를 기준으로 굵직한 분쟁 지역을 지도에 찍어 보았다. 점을 누르면 분쟁이 왜 생겼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그 선이 어떤 땅 위에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바탕은 일부러 지형도를 깔았다. 산맥과 사막과 강이 보여야 선의 사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점들을 늘어놓고 보니 분쟁의 뿌리가 대략 세 갈래로 묶였다.
첫째는 남이 그어 준 선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이의 듀랜드 라인은 1893년 영국령 인도가 그었고, 아프가니스탄은 한 번도 이 선을 국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2025년 10월 국경 전역에서 교전이 붙었다가 도하에서 휴전했지만, 2026년 2월 파키스탄의 공습으로 다시 전쟁이 됐다. 카불과 칸다하르가 폭격당했고, 9월 들어 교전이 다시 격해졌다. 파슈툰 사람들이 사는 땅 한가운데를 지나는 선이다.
둘째는 전쟁이 멈춘 자리다. 카슈미르의 통제선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갈라선 뒤 전쟁이 멈춘 곳에 그어졌다. 2025년 4월 관광객 26명이 피살되자 인도는 5월 7일 파키스탄 안쪽을 공습했고, 나흘간의 교전 끝에 5월 10일 휴전했다. 휴전은 지금도 유지되지만 인도의 인더스강 조약 효력 정지와 서로의 영공 제한은 1년 넘게 풀리지 않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선도 결국 이 범주로 굳어 가는 중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18~20%가량을 차지한 채, 러시아는 도네츠크 전역에서 물러나라 하고 우크라이나는 지금 선에서 멈추자고 한다. 2026년 4월 부활절에 맺은 32시간 휴전은 끝나자마자 깨졌다.
셋째는 바다와 그 밑의 자원이다. 남중국해의 스카버러 암초와 세컨드토머스 암초에서는 중국과 필리핀의 해경선이 몇 년째 부딪친다. 2026년 9월 말에도 중국 함정이 필리핀의 보급선을 막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베네수엘라가 가이아나 국토의 3분의 2 넘는 에세키보 지역을 다시 제 땅이라 주장하기 시작한 건 오래된 일이지만, 그 목소리가 커진 건 2015년 인근 바다에서 대형 유전이 발견된 뒤였다. 이 사건은 2026년 5월 국제사법재판소 심리를 마치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산과 강은 공정한가
지도를 지형도로 깐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산맥이나 강을 따라 그은 국경을 '자연스러운' 국경이라 부른다. 실제로 많기도 하다. 2020년 학술지 *Water Policy*에 실린 포펠카와 스미스의 연구에 따르면 국제 국경의 23%가 폭 30m 넘는 강을 따라간다. 남미는 국경의 거의 절반이 강이다.
그런데 자연을 따른 선이 저절로 공정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연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선을 흔든다.
1881년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안데스를 따라 국경을 정하면서 '물을 가르는 가장 높은 능선'을 경계로 삼았다.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은 선과 빗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분수령이 같을 거라 여긴 것이다. 남부 안데스에서는 둘이 달랐다. 칠레는 분수령을, 아르헨티나는 가장 높은 봉우리 선을 내세웠다. 결국 1902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이름으로 나온 중재 판정이 둘 사이를 절충했고, 두 나라는 1904년 국경 고개에 '안데스의 그리스도' 상을 세웠다. 남부 파타고니아 빙원 일부는 지금도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강은 아예 움직인다. 미국과 멕시코는 리오그란데강을 국경으로 삼았는데, 1864년 홍수로 강이 물길을 남쪽으로 옮겼다. 강을 따라 국경도 옮겨야 하는가. 1911년 국제 중재는 땅을 나누라고 했지만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차미살 분쟁'은 1963년 협정이 맺어지고서야 끝났다. 멕시코가 약 366에이커를 돌려받았고, 두 나라는 다시는 강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콘크리트 수로에 가뒀다. 강을 따라 선을 그어 놓고, 결국 그 선을 지키려고 강을 멈춰 세웠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분쟁은 지형과 지도가 어긋난 자리에서 시작됐다. 1904년 조약은 국경을 당렉 산맥의 분수령으로 정했다. 그런데 1907년 프랑스 측량 장교들이 만든 지도의 선은 분수령에서 벗어나 프레아비헤아르 사원을 캄보디아 쪽에 넣었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그 지도를 받고도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태국의 침묵을 근거로 캄보디아의 손을 들었다. 120년 전 지도 한 장의 어긋남이 2025년 7월과 12월의 교전으로 이어졌다. 12월에만 20일 동안 최소 101명이 숨지고 50만 명 넘게 피란했다.
선을 긋지 않고 남긴 빈칸이 화근이 되기도 한다. 1949년 카라치 협정은 카슈미르의 휴전선을 NJ9842라는 지점까지만 긋고, 그 너머는 '거기서 북쪽으로 빙하까지'라고만 적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얼음 땅이라 굳이 그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1984년 인도가 그 빙하, 시아첸을 먼저 차지했고, 지금도 양국 병력이 해발 5,500m 위에 머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장이 지도의 빈칸에서 생겨났다.
휴전선 위의 나라
우리에게 국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은 약 248km, 그 남북으로 2km씩 폭 4km의 비무장지대가 놓여 있다. 이 선은 산줄기나 강을 따르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 양쪽 군대가 마주 서 있던 접촉선이 그대로 선이 됐다. 전쟁이 그은 선이다.
그 선 위에서 일어난 일을 꼽자면 끝이 없다. 1976년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를 치던 유엔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에게 살해됐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땅굴 네 개가 발견됐다. 2015년 8월에는 군사분계선 남쪽 440m 지점에서 목함지뢰가 터져 부사관 두 명이 크게 다쳤다. 2024년에는 오물풍선 약 5,500개가 날아왔고, 10월 15일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북측 도로를 폭파했다. 한국을 '적대국가'로 헌법에 적은 북한은 지금 군사분계선 일대를 요새로 바꾸는 중이다. 2026년 9월 21일에도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로 의심되는 폭발이 일어나 간부 세 명이 다쳤다.
바다는 더 복잡하다.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은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설정했지만, 북한은 1999년 그보다 훨씬 남쪽에 자기 선을 따로 선포했다. 두 선 사이의 바다에서 1999년과 2002년의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이 일어났다.
남쪽과 동쪽 바다에서도 선은 아직 다 그어지지 않았다. 독도에는 한국 경찰 경비대가 상주하지만 일본은 2005년 시마네현 조례로 '다케시마의 날'을 만들었고, 2026년 8월 방위백서에서도 22년째 영유권을 주장했다. 정부는 그때마다 일본 외교관과 무관을 불러 항의한다. 제주 남쪽의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149km 떨어진 물속 암초로, 2003년 우리 해양과학기지가 들어섰지만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이 겹치는 바다에 있다.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에는 중국이 2018년과 2024년 대형 구조물을 세웠고, 2025년 2월 이를 살피러 간 우리 조사선을 중국 해경이 막아섰다. 한일이 1974년 경계 대신 '함께 개발하자'고 묶어 둔 7광구 공동개발구역은 2028년 6월 협정 만료를 앞두고 2025년 6월부터 어느 쪽이든 종료를 통보할 수 있게 됐다.
선을 지키는 장치들
선이 있는 곳에는 선을 지키는 장치도 함께 생겼다. 나는 이를 네 겹으로 나눠 보았다.

첫째는 떼어 놓기다. 두 군대 사이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땅을 둔다. 비무장지대가 그렇고, 1964년부터 유엔 평화유지군이 지키는 키프로스의 그린라인 180km가 그렇다. 1974년부터 골란고원의 이스라엘과 시리아 병력 사이를 지키는 유엔 감시군도 있다. 한반도 정전 체제에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있다. 출범 당시 넷이던 중립국 감독위원은 지금 스위스와 스웨덴 두 나라만 남았다.
둘째는 지켜보기다. 철책과 초소와 카메라, 그리고 이제는 센서와 위성이 맡는다. 다음 장에서 따로 다룰 AI가 들어오는 곳이 여기다.
셋째는 말 걸기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듬해인 1963년 8월 30일, 미국과 소련 사이에 직통선이 개통됐다. 첫 시험 전문은 영어 자판을 시험하는 문장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the lazy dog'였다. 바다에서도 비슷한 약속이 있다. 2014년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미국·중국·일본 등 21개국 해군이 '해상 우발 조우 규범(CUES)'을 채택했다. 서로 마주쳤을 때 어떤 신호를 주고받을지 정한 일종의 바다의 예절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오해가 사고로 번지기 전에 한 번 멈출 틈을 만든다. 남북 사이에도 연락선이 있지만 북한은 2023년 4월부터 응답하지 않는다.
넷째는 나눠 쓰기다. 선을 긋지 못할 때 아예 함께 쓰는 공간으로 남긴다. 7광구 공동개발구역, 한중 잠정조치수역이 그렇다. 정전협정은 한강 하구 약 67km를 남북 양쪽 민간 선박에 열어 둔 중립수역으로 정했다. 실제로 배가 다닌 일은 드물었지만, 2018년 남북은 65년 만에 처음으로 이 물길을 함께 조사해 암초 21개를 찾았다. 강이 국경이 되지 못하고 함께 쓰는 물로 남은 자리다. 끝내 풀리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제3자에게 맡긴다. 에세키보도, 프레아비헤아르도 그 길을 걸었다.
AI가 국경에 서면
지켜보기는 가장 빠르게 기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우리 군은 2010년대 중반 휴전선 철책에 광섬유 그물을 깔았다. 철책이 끊기거나 휘면 상황실에 경보가 울리는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이다. 2014년 보도 기준 1,700억 원이 들었고, 병력을 20%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기계가 생긴 뒤에도 사람은 빠져나갔다. 2012년에는 북한 병사가 GOP 생활관 문을 두드리고서야 발견된 '노크 귀순'이, 2021년에는 잠수복과 오리발 차림으로 바다를 건너와 배수로로 들어온 '오리발 귀순'이 있었다. 이후 군은 AI가 카메라 영상을 대신 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12월 22사단 GOP와 해안부대에 AI 영상분석 체계가 처음 들어갔고, 2026년 4월에는 GOP 경계 병력을 약 2만 2천 명에서 약 6천 명으로 줄이고 그 빈자리를 AI 경계로 메우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병력이 줄어드는 나라에서 기계에 기대는 건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같은 기사에 기술에도 오류가 있다는 전문가의 걱정이 함께 실렸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는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의 자율 감시탑이 서 있다. 높은 기둥 위에 레이더와 카메라를 얹고, AI가 사람과 차량을 골라내 알린다. 2024년 말 300번째 탑이 세워졌고,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은 3억 6,300만 달러를 들여 탐지 거리가 더 긴 탑 200기 이상을 추가로 들이기로 했다. 여기서도 지형이 문제다. 탑은 언덕 위에 서서 가시선이 트인 곳만 본다. 2026년 9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보도에는 능선에 가려 400여 m 떨어진 탑에서 보이지 않던 사망 현장이 나온다. 같은 보도는 기록된 사망 138건 가운데 81건 이상이 지형에 가리지 않은 탑의 시야 안에서 일어났다고 전했다. 보는 것과 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가장 아픈 사례는 이스라엘이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스마트 장벽'에는 지상 레이더와 카메라, 원격 사격 체계까지 갖춰져 있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값싼 드론으로 감시탑과 통신 장비부터 무력화한 뒤 불도저로 수십 곳을 동시에 뚫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기술에 지나치게 기댔다는 반성이 나왔다.
AI가 국경에서 가장 빛나는 곳은 오히려 바다다. 2024년 1월 *Nature*에 실린 글로벌 피싱 워치 연구팀의 논문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위성 레이더 영상과 선박 위치 신호를 딥러닝으로 맞대 보았다. 그 결과 전 세계 산업용 어선의 약 75%가 공개 추적 시스템에 잡히지 않는 '어두운 배'였다. 우리 해경도 항공기와 헬기가 찍은 영상을 AI가 분석해 불법 조업 어선을 가려내는 체계를 키우는 중이다. 넓은 바다에서 사람이 일일이 볼 수 없는 것을 기계가 먼저 본다.
경계도 있다. 유럽연합은 공항 출입국 심사에 AI 거짓말 탐지기를 시험한 적이 있다. 화면 속 아바타 심사관이 여행자의 얼굴 미세 표정을 읽어 위험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는데,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EU AI법은 출입국·망명·국경 관리에 쓰는 AI를 '고위험'으로 분류했다. 국경의 AI는 사람의 생사와 이동의 자유를 가른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하고,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가 더 분명해야 한다.
AI는 지켜보기를 넓히지만 나머지 세 겹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본 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무엇을 나눠 쓸지는 여전히 사람의 일이다.
아프리카를 다시 그린다면
이제 노트가 던진 낱말을 조금 더 멀리 끌고 가 본다. 국경이 처음부터 잘 그어졌다면 어땠을까. 그 질문이 가장 날카로워지는 곳이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이 유난히 많다. 경제학자 알레시나·이스털리·마투셰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경의 44%가 직선이다. 흔히 1884~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이 이 선들을 그었다고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조금 다르다. 14개국이 모인 베를린 회의에 아프리카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회의가 직접 정한 국경은 콩고 일대뿐이었다. 회의가 정한 것은 해안을 실제로 차지하고 다른 열강에 알리면 그 땅을 갖는다는 분할의 규칙이었다. 대부분의 선은 이후 20여 년에 걸친 양자 조약에서 그어졌다. 당시 영국 총리 솔즈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백인의 발이 닿은 적 없는 땅의 지도 위에 선을 그어 왔다. 산과 강과 호수를 서로 나눠 주었는데, 그것들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몰랐다는 작은 장애만 있었다."
그 선이 사람들을 어떻게 갈랐는지는 숫자로 남아 있다. 경제학자 미칼로풀로스와 파파이오아누는 1959년 인류학자 머독이 그린 아프리카 민족 지도를 오늘의 국경과 겹쳐 보았다. 분석한 민족 825개 가운데 229개, 약 28%가 영역의 10% 이상이 다른 나라로 잘려 나간 '갈라진 민족'이었다. 마사이족은 케냐에 62%, 탄자니아에 38%로 나뉘었다. 그리고 1997~2013년의 분쟁 기록을 보면, 갈라진 민족이 사는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분쟁의 강도가 40%가량 높았고 더 오래 이어졌다.
독립한 아프리카 나라들은 이 선을 고치지 않기로 했다. 1964년 카이로에 모인 아프리카통일기구 정상들은 독립 당시의 국경을 존중하자고 결의했다. 선을 하나 고치기 시작하면 대륙 전체가 다시 전쟁터가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후 분리 독립에 성공한 나라는 1993년 에리트레아와 2011년 남수단 둘뿐이다. 그리고 남수단은 독립 2년 만인 2013년 내전에 빠졌다. 반대쪽 사례도 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거의 같은 나라인데도, 국가가 무너지자 씨족 사이의 싸움이 이어졌다. 민족에 맞춰 선을 다시 긋는다고 평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상상은 해 볼 수 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가능한 한 넓은 땅을 나눠 갖도록 선을 다시 긋는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여기서 꺼낼 도구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다.
가장 가까운 쪽이 내 땅
평면에 점을 몇 개 찍는다. 그리고 평면의 모든 곳을 가장 가까운 점에 나눠 준다. 그러면 점마다 칸이 하나씩 생긴다. 이것이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다. 두 점 사이의 경계는 정확히 두 점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수직선이 되고, 그 선들이 모여 다각형의 조각보를 이룬다.
이름은 1908년 이 구조를 일반적으로 정의한 러시아 수학자 게오르기 보로노이에게서 왔지만, 생각 자체는 더 오래됐다. 1644년 데카르트가 우주의 소용돌이를 설명하며 그린 그림에 비슷한 분할이 보이고, 1850년 디리클레가 수학적으로 다뤘다. 1911년 미국 기상청의 앨프리드 티센은 넓은 지역의 평균 강수량을 구하려고 각 관측소에 가장 가까운 땅을 묶었다. 그래서 지리학에서는 지금도 '티센 다각형'이라 부른다. 1855년 존 스노가 런던 콜레라 지도에 그린 선도 비슷하다. 그는 브로드가 펌프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다른 펌프와 같아지는 지점을 이었다. 골목을 따라 걷는 거리로 잰 선이니, 오늘 해 볼 '지형을 반영한 보로노이'의 먼 조상쯤 된다.
보로노이는 생각보다 여러 곳에 숨어 있다. 휴대전화가 어느 기지국에 붙을지, 화재 신고가 어느 소방서로 갈지는 대개 가장 가까운 쪽으로 정한다. 로봇이 장애물 사이로 길을 찾을 때 보로노이의 경계선을 따라가면 모든 장애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안전한 길이 된다. 점마다 자기 칸의 무게중심으로 옮겨 가기를 되풀이하는 '로이드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묶는 k-평균 군집화의 원형이다. 생물에게서도 보인다. 1974년 동물행동학자 발로는 모잠비크 틸라피아 수컷들이 물 밑에 판 둥지 구덩이가 서로 맞닿으면서 다각형 영역을 이룬다고 보고했다. 빽빽해질수록 육각형이 늘었지만 가장 흔한 모양은 오각형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보행자 연구에서는 군중 속 한 사람의 보로노이 칸 넓이를 그 사람이 차지한 공간으로 보고 밀도를 잰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1966년 사람 사이의 거리를 넷으로 나눴다. 45cm 안은 연인과 가족의 친밀한 거리, 45cm에서 1.2m는 친구와의 개인적 거리, 1.2m에서 3.6m는 업무상 사회적 거리, 그 너머는 공적인 거리다.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낯선 사람이 1.2m 안으로 들어오면 대개 불편해진다. 남자 화장실에서 문에서 가장 먼 소변기를 고르는 게 최선인지를 진지하게 따진 수학 논문도 있다. 보로노이는 사람이 서로의 공간을 지키며 흩어지는 방식을 설명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아래 놀이판에서 세 가지를 직접 해 볼 수 있다.
광장의 사람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들어서면 몇 명 되지 않아도 누군가는 남의 1.2m 안에 서게 된다. '물러서기'를 누르면 각자 자기 칸의 한가운데로 조금씩 옮겨 간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말없이 서로 간격을 맞추는 모습과 닮았다. 이 광장에서 모두가 1.2m를 지킬 수 있는 한계는 벌집처럼 설 때 약 48명이다. 사람 수를 늘리다 보면 아무리 물러서도 더는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국경 분쟁이 결국 땅이 모자란 곳에서 터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프리카 다시 긋기. 큰 민족·언어 집단 51곳의 중심에 씨앗을 놓고 보로노이로 칸을 나눈 뒤 오늘의 국경을 점선으로 겹쳤다. 씨앗 위치는 교과서 민족 지도를 옮긴 근사치일 뿐이다. 머독 지도에는 이런 집단이 800개 넘게 있고, 실제 사람들은 섞여 살며 계절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도 이 칸들은 사람이 사는 자리를 기준으로 그었으니 자로 그은 오늘의 국경과는 결이 다르다. 씨앗 하나를 끌어 옮겨 보면 이웃 칸의 경계가 통째로 바뀐다. 선을 공정하게 긋는 수학은 간단하지만, 그 수학에 넣을 씨앗, 곧 누가 어디에 사는가를 정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 '지형 반영'을 켜면 거리 대신 넘어가는 수고로 칸을 나눈다. 높은 땅과 가파른 비탈, 큰 강과 호수를 지날수록 비용이 붙고, 각 씨앗에서 가장 적은 수고로 닿는 땅이 그 씨앗의 칸이 된다. 존 스노가 골목을 따라 걷는 거리로 선을 그은 것과 같은 발상이다. 그러면 경계가 산등성이와 강줄기 쪽으로 끌려가며 구불구불해진다. 내 화면에서 경계가 강이나 호수, 급한 비탈 위를 지나는 비율은 거리만 쓸 때 33%였는데 지형을 반영하니 46%로 올랐다. 지형은 분명 선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강은 움직이고, 분수령과 봉우리는 어긋나며, 같은 강 양쪽에 같은 사람이 사는 일도 흔하다. 지형을 따른다고 끝나지 않는다. 지형도 누군가 해석해야 한다.
바다의 중간선. 사실 보로노이는 이미 국경 획정에 쓰이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5조는 마주 보는 두 나라가 합의하지 못하면 어느 쪽도 양국 해안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중간선을 넘어 영해를 넓힐 수 없다고 정한다. 해안선 위의 점들로 그린 보로노이에서 나라가 다른 칸끼리 맞닿는 선, 그게 바로 중간선이다. 놀이판의 '작은 섬 기점'을 꺼 보면 선이 크게 휘는 걸 볼 수 있다. 섬 하나, 바위 하나를 기점으로 치느냐 마느냐에 따라 바다의 주인이 바뀐다. 독도와 서해5도를 둘러싼 긴장, 남중국해 암초 위에 섬을 쌓는 경쟁이 모두 여기서 나온다. 물에 잠긴 암초인 이어도가 기점이 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 걸음씩 물러서는 선
노트의 낱말 하나에서 꽤 멀리 왔다. 오늘 따라간 선들을 돌아보면 하나가 분명해진다. 선을 공정하게 긋는 방법은 이미 있다. 가장 가까운 쪽이 내 땅이라는 보로노이의 원칙은 단순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문제는 늘 그 바깥에 있었다. 씨앗을 어디에 찍을지, 어느 섬을 셀지, 강이 움직이면 어떻게 할지, 그리고 이미 그어진 선 위에 수십 년 쌓인 기억과 피를 어떻게 할지.
광장의 사람들은 아무도 지시하지 않는데도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며 자기 칸을 만든다. 누가 먼저 물러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조금씩 물러설 때 비로소 각자의 칸이 생긴다. 국경도 그렇지 않을까. 완충지대는 서로 물러선 자리고, 핫라인은 총을 쏘기 전에 한 번 묻는 장치고, 공동개발구역은 선을 긋는 대신 함께 쓰기로 한 약속이다. AI가 아무리 멀리 보더라도 그 한 걸음을 대신 물러서 주지는 못한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노트 속 한 줄에서 출발해 오늘의 생각 한 장에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