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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출입구 주변 안내판. 파란 판 위에 「4번 출입구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한글 안내와 그 아래 볼록한 점자가 나란히 찍혀 있고, 손가락 하나가 점자를 짚고 있다 (사진 국립국어원,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KR)
연재오늘의 한 페이지 · 11회

할 말을 못 하는 사람의 사연을 생각해 본다

노트에 적힌 문장은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사연을 생각해보라'였다. 점자와 호킹의 기계음에서 가족 목소리로 되살린 목소리, 뇌 신호를 곧장 문장으로 바꾸는 장치, 수어 번역의 어려움까지 말을 대신해 온 기술을 따라간다. 말소리를 받아 적어 점자로 바꾸고 그림을 눌러 말하게 하는 작은 도구를 직접 만들어 봤다. 마지막으로 아파도 말하지 못하는 반려동물과, 목마르면 초음파를 내는 토마토 이야기까지 살핀다. 오늘의 한 페이지 열한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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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출입구 주변 안내판. 파란 판 위에 「4번 출입구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한글 안내와 그 아래 볼록한 점자가 나란히 찍혀 있고, 손가락 하나가 점자를 짚고 있다 (사진 국립국어원,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KR)

오늘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사연을 생각해보라.

읽고 한참 그 자리에 머물렀다. 원래는 회의에서 끝내 입을 열지 못한 사람,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사람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글자 그대로 읽혔다. 말을 하고 싶은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도 있고, 어느 날 병이나 사고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다. 얼마나 답답할까. 배가 아파도, 물이 마시고 싶어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걸 전할 길이 막혀 있다.

오늘은 그 사람들 곁에서 말을 대신해 온 기술을 따라가 본다. 점자에서 시작해 기계음과 되살린 목소리, 뇌 신호를 곧장 문장으로 바꾸는 장치까지 간다. 그리고 AI로 아주 작은 도구 하나를 만들어 봤다. 말소리를 받아 적어 점자로 바꾸고, 그림을 누르면 대신 말해 주는 판이다. 마지막으로 말을 못 하는 게 사람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는 반려동물, 그리고 목이 마르면 소리를 낸다는 토마토다.

말을 못 하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말이 막히는 자리는 여러 곳이다. 귀가 안 들려서 말을 배우지 못한 경우가 있다. 후두암으로 성대를 떼어 낸 경우도 있다. 루게릭병(ALS)이나 뇌성마비처럼 입과 혀를 움직이는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 뇌졸중으로 말을 만드는 뇌 영역이 다친 실어증도 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말은 하는데 듣는 쪽이 그 언어를 모르는 경우다. 수어를 쓰는 농인이 그렇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가운데 청각장애 449,269명, 시각장애 245,361명, 언어장애 22,830명(2023년)을 나란히 놓은 막대그래프. 아래에 농인 약 5만 2천 명에 수어통역사 1,948명이라는 주석이 있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보건복지부 집계로 2025년 말 등록 장애인은 262만 7,761명이고, 그 가운데 청각장애가 44만 9,269명으로 17.1%다(보도). 새로 등록하는 사람 가운데는 청각장애가 30.6%로 가장 많다. 나이 들어 잘 안 들리게 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언어장애로 등록된 사람은 2023년 기준 2만 2,830명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일상에 지장이 있을 만큼 청력을 잃은 사람이 세계에 4억 3천만 명이라고 본다.

수어를 일상으로 쓰는 농인은 약 5만 2천 명으로 추정되는데, 수어통역사는 1,948명이다(한국수어 활용 조사 기반 연구). 통역사 한 명이 스물일곱 명을 맡는 셈이다.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은행 창구에서 통역사가 늘 곁에 있을 수는 없다.

기계가 대신 말해 온 200년

말을 대신해 온 기술의 연표. 1824 브라유 6점 점자, 1926 박두성 훈맹정음, 1985 호킹의 합성 목소리, 2010 이버트 목소리 재구성, 2016 한국수화언어법 시행, 2019 실시간 자막 앱, 2020 KT 가족 목소리로 복원, 2021 닷 패드, 2023 뇌 신호→문장 분당 62·78단어, 2024 ALS 환자 단어 정확도 97.5%, 2025 뇌 신호→목소리 0.025초

시작은 손끝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는 세 살에 사고로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고, 열다섯 살이던 1824년 점 여섯 개로 글자를 나타내는 방식을 만들었다. 우리 점자는 그보다 한 세기 뒤에 나왔다. 송암 박두성이 1926년 11월 4일 반포한 「훈맹정음」이다. 올해 11월 4일이 꼭 100주년이고, 지금 그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다(세계일보).

루이 브라유의 초상 판화. 단추가 달린 웃옷을 입고 정면을 보고 있다. 앙리 티리아 1887년

*그림: Henri Thiriat, 「Engraving of Louis Braille」(1887),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jpg)*

목소리를 대신한 기계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스티븐 호킹이다. 1985년 기관절개 수술 뒤 말을 잃은 그는 컴퓨터가 읽어 주는 합성 음성으로 말했다. 그 목소리의 이름은 「퍼펙트 폴(Perfect Paul)」이다. MIT의 음성학자 데니스 클랫이 자기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호킹은 그 소리를 내는 장치인 콜텍스트 5010을 20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썼다(컴퓨터역사박물관). 1997년부터는 인텔이 그의 입력 장치를 함께 만들었다. 그 소프트웨어는 나중에 공개돼 누구나 쓸 수 있게 됐다.

호킹이 쓰던 음성 합성기와 컴퓨터를 담은 금속 상자. 붉은 판 위에 「STEPHEN」이라고 적힌 캘리포니아 자동차 번호판이 붙어 있다. 1999년, 런던 과학박물관 소장

*그림: Science Museum London / Science and Society Picture Library, 「Computer and speech synthesiser housing, 1999」, CC BY-SA 2.0, 위키미디어 커먼즈.jpg)*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갑상선암 수술로 목소리를 잃었다. 스코틀랜드의 음성 합성 회사 세레프록은 이버트가 남긴 영화 DVD 해설 녹음을 모아 그의 목소리를 다시 지었고, 2010년 3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처음 들려줬다(ABC 뉴스). 남이 만든 기계음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일이 그때부터 가능해졌다. 다만 그에게는 몇 시간짜리 녹음이 남아 있었다는 행운이 있었다.

목소리를 돌려주는 AI

AI가 가장 먼저 바꾼 것은 그 행운의 문턱이다. 애플은 2023년 아이폰에 「개인 음성」 기능을 넣었다. 무작위 문장 15분을 읽어 녹음하면 기기 안에서 내 목소리를 학습하고, 글자를 치면 그 목소리로 읽어 준다(9to5Mac).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사람이 목소리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미리 저장해 두라고 만든 기능이다.

녹음조차 남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할까. KT는 2020년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목소리를 잃은 20명을 뽑았는데, 이들은 자기 목소리 녹음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성별의 가족이 1,000문장, 평균 여섯 시간을 대신 읽었다. 그 소리로 본인의 목소리를 추정해 만들었다(아주경제). 2022년에는 승일희망재단과 함께 루게릭병 환자 8명의 목소리를 되살렸다(세계일보). 엄마를 닮은 딸의 목소리, 형을 닮은 동생의 목소리다. 가족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이 기술의 재료가 됐다.

뇌에서 곧장 말로

근육이 아예 움직이지 않으면 글자를 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뇌에 전극을 붙여 말하려는 신호를 직접 읽는 연구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나아갔다.

연구어떤 사람결과
스탠퍼드, 2023 (Nature)루게릭병 환자분당 62단어를 문장으로
UCSF, 2023 (Nature)뇌간 뇌졸중으로 말을 잃은 47세 여성전극 253개, 분당 78단어, 결혼식 영상 속 목소리와 얼굴 아바타로
UC 데이비스, 2024 (NEJM)루게릭병 환자 케이시 해럴12만 5천 단어 어휘에서 정확도 97.5%, 248시간 넘게 일상에서 사용
UC 데이비스, 2025 (Nature)같은 연구 참가자뇌 신호를 글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목소리로, 지연 약 0.025초. 억양을 바꾸고 짧은 노래도 불렀다

여기서 AI는 두 겹으로 일한다. 신경망이 전극 신호에서 소리 조각을 읽어 내고, 언어 모델이 그 조각들을 말이 되는 문장으로 고친다. 사람이 대화할 때 상대의 웅얼거림을 문맥으로 알아듣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아직 머리를 여는 수술이 필요하고, 참가자는 한 연구에 한두 명이다. 병원에서 누구나 받는 치료가 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알아듣는 쪽이 바뀌어야 하는 말

말을 아예 못 하는 게 아니라, 말소리가 남과 달라서 기계가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뇌성마비나 파킨슨병이 있는 사람의 말은 음성 비서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학습한 목소리들이 대부분 '보통' 발음이었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런 목소리를 모으는 「프로젝트 유포니아」로 1,000명 넘는 사람에게서 발화 95만 개 이상을 모았고, 2021년에는 그걸로 만든 앱 「프로젝트 릴레이트」를 내놨다(구글). 미국 일리노이대가 이끄는 「음성 접근성 프로젝트」에는 애플·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이 함께 돈을 냈다. 2025년 9월까지 약 2,000명이 참여했고, 그 자료를 넣자 마이크로소프트 음성 인식이 이런 말소리를 18~60% 더 잘 알아들었다(일리노이대). 말하는 사람을 고치는 대신 듣는 기계를 고친 것이다.

받아쓰기도 그렇다. 구글은 2019년 미국 갤러뎃대와 함께 말소리를 실시간 자막으로 바꾸는 「라이브 트랜스크라이브」를 내놨다(구글). 국내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자막에서 출발한 「소보로」가 2022년 600곳 넘는 기관에 쓰였다(구글 코리아). 지금은 회의록과 강의 요약에도 쓴다. 접근성을 위해 만든 기술이 모두의 기술이 되는 흔한 길이다.

수어는 손으로 하는 한국어가 아니다

수어 번역은 이 가운데 가장 어렵고, 가장 논쟁이 많은 분야다. 2016년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정했다(문화체육관광부). 수어는 한국어 낱말을 손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문법이 따로 있는 언어라는 뜻이다. 손 모양만이 아니라 얼굴 표정과 고개 움직임, 몸 앞의 공간까지 문법에 쓴다. 부정은 고개를 젓거나 얼굴을 찡그려 나타낸다. 그래서 어떤 농인에게는 한글 자막도 외국어처럼 읽힌다(더나은미래).

2016년 미국 워싱턴대 학생들이 만든 수어 번역 장갑은 상까지 받았지만 농인 사회에서 날 선 비판을 받았다(KQED). 장갑은 표정과 고개 짓을 읽지 못했다. 다리는 한쪽으로만 놓였다. 농인이 장갑을 끼고 맞춰 줘야 하고, 듣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만드는 동안 농인에게 묻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2017년 생긴 사회적기업 이큐포올이 공공기관 웹 정보와 재난 문자를 AI 수어 아바타로 보여 준다(ITWorld). 시청자미디어재단도 2025년 「이어줌」 앱에 AI 아바타 수어를 시험으로 넣었다(뉴데일리). 다만 연구자들은 아바타 수어가 아직 일기예보처럼 틀이 정해진 문장에 머문다고 지적한다(한국정보처리학회 발표). 사람 통역사를 대신하기보다, 통역사가 없는 새벽의 재난 문자 같은 빈자리를 메우는 쪽이 지금의 쓰임새다.

손끝으로 읽는 화면

손목에 찬 둥근 스마트 점자 시계를 다른 손 손가락으로 만지는 모습. 시계 화면에 점자 핀이 솟아 있다. 2017년 서울 금천구 닷 사무실

*그림: Korea.net /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Dot Smart Braille Watch」(2017), CC BY-SA 2.0, 위키미디어 커먼즈.jpg)*

점자도 디지털로 바뀌었다. 핀이 오르내리며 글자가 계속 바뀌는 점자 단말기다. 서울의 스타트업 닷은 점자 시계를 만든 데 이어, 핀 2,400개로 글자뿐 아니라 그림과 그래프까지 손끝에 띄우는 「닷 패드」를 애플과 2년쯤 함께 개발했다. 2021년 12월부터 아이폰·아이패드 화면 읽기와 연결된다(이코노미스트).

문제는 값과 배움이다. 점자정보단말기는 대당 5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경기도가 2025년 보급 신청을 받았더니 3,600명이 신청했고 761명만 받았다(경기일보). 게다가 시각장애인의 90% 넘게가 점자를 읽지 못한다고 한다. 나이 들어 시력을 잃는 사람이 많고, 점자를 가르치는 곳은 적다.

만들어 본 것: 말 잇는 판

여기까지 읽고 나니,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AI에게 세 가지를 짜 달라고 했다. 첫째, 글이 들어오면 한국 점자로 바꿔 점자 단말기처럼 핀이 오르내리는 화면. 둘째, 그림 단추를 눌러 문장을 만들면 소리 내 읽어 주는 말판. 이런 판을 보완대체의사소통(AAC)이라고 부른다. 셋째, 말소리를 받아 적어 그 점자 화면으로 흘려 보내고, 카메라로 손짓을 알아보는 화면이다. 고양이 통증 척도는 뒤에 이야기할 동물 편 때문에 덧붙였다.

말 잇는 판. 「점자 패드」는 글을 한국 점자로 바꿔 칸마다 핀이 올라오게 보여 준다. 「자막 흘려 보내기」를 누르면 받아쓰기 자막이 들어오듯 점자가 계속 바뀐다. 「말판」은 그림 단추로 문장을 만들어 소리 내 읽어 준다. 「고양이 통증 척도」는 다섯 항목을 골라 점수를 낸다. 마이크와 카메라는 이 액자 안에서는 켤 수 없다.

마이크와 카메라는 보안 때문에 글 안의 액자에서는 켤 수 없게 막아 두었다. 새 창에서 듣고 보기를 누르면 따로 한 화면으로 열린다. 말소리는 브라우저에 들어 있는 음성 인식(크롬·엣지·사파리)으로 받아 적는다. 이때 소리는 브라우저 회사 서버로 간다. 카메라 영상은 기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손짓은 구글 미디어파이프의 손짓 인식 모델로 알아보는데, 엄지 척·엄지 아래·편 손바닥·주먹·검지 위·브이·「사랑해」 손 모양 일곱 가지뿐이다. 이걸 「좋아요」 「싫어요」 「잠깐만요」 「아파요」 「저기요」 「고마워요」 「사랑해요」에 묶어 1초 들고 있으면 읽어 주게 했다.

이건 수어 번역이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수어는 얼굴과 공간을 쓰는 언어고, 일곱 가지 손짓은 그 근처에도 못 간다. 손이 불편해 글자를 치기 어려운 사람이 급할 때 쓰는 신호판 정도다.

점자 변환기는 시간이 가장 많이 든 부분이다. 한국 점자는 생각보다 규칙이 많다. 첫소리 ㅇ은 쓰지 않고, 받침과 첫소리는 같은 자음이라도 점이 다르다. '가·나·다·마…'는 모음 ㅏ를 빼고 자음만 쓴다. '억·언·얼·연·열·영·옥·온·옹·운·울·은·을·인'은 한 칸짜리 약자가 따로 있고, '것'도 그렇다. '그래서·그런데' 같은 접속어는 두 칸 약어로 줄인다.

AI가 짠 첫 판이 맞는지는 오픈소스 점역 엔진 liblouis의 한국어 표(ko-g2)와 대조해 봤다. 기준이 될 정답을 따로 두고 맞혀 보는 방식이다.

직접 짠 한국 점자 변환기가 liblouis와 같은 점자를 낸 비율. 터널 글 낱말 1,313개는 첫 판 91.7%에서 규칙 셋을 고쳐 100%, 오시오 원고 낱말 15,960개는 99.9%, 문장 2,619개는 99.7%

어디서 틀렸나

  • 첫 판은 91.7%였다. 틀린 109개 낱말을 보니 규칙 셋을 잘못 알고 있었다. 첫째, '남·닫·말'처럼 받침이 있어도 '나·다·마' 약자를 쓴다. 나는 받침이 있으면 풀어 쓰게 해 놓았다. 둘째, '성·정·청'은 'ㅅ·ㅈ·ㅊ+영' 약자로 쓰는데, 나는 모음을 'ㅓ'가 아니라 'ㅕ'로 잘못 잡았다. 셋째, '끊·넓'처럼 겹받침이 붙은 글자도 '은·얼' 약자에 남은 받침을 붙여 쓴다.
  • 숫자 뒤 띄어쓰기를 몰랐다. "100미터"처럼 숫자 뒤에 ㄴ·ㄷ·ㅁ·ㅋ·ㅌ·ㅍ·ㅎ으로 시작하는 글자가 오면 한 칸 띄운다. 숫자의 점 모양이 이 일곱 자음의 첫소리 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띄우지 않으면 숫자가 이어지는 것처럼 읽힌다. "1,210"의 쉼표를 영어 점자 쉼표로 넣은 것도 고쳤다.
  • 남은 0.3%는 판정을 보류했다. 문장 2,619개 가운데 8개가 여전히 다르다. "일기예보"에서 모음 뒤 '예' 앞에 붙임표를 넣느냐, "껐다"의 'ㅆ' 받침을 어떻게 쓰느냐 같은 자리다. 내가 읽은 규칙으로는 내 쪽이 맞아 보이고 "로봇청소기"는 liblouis가 'ㅊ'을 빠뜨린 것 같지만, 국립국어원 「한국 점자 규정」 원문과 한 줄씩 맞대 보지는 못했다. 점역사가 보면 다른 판정이 나올 수 있다.
  • 영어는 약자 없는 1급 점자만 한다. 영문판 화면은 낱자를 하나씩 옮긴다. 실제 영어 점자 책은 약자를 많이 쓰는 2급이다.
  • 읽어 주는 목소리는 기기에 달렸다. 말판은 브라우저에 들어 있는 음성 합성을 쓴다. 한국어 음성이 깔려 있지 않은 컴퓨터에서는 어색하게 읽거나 읽지 못한다.

말 못 하는 다른 존재들

노트 문장을 다시 읽다가, 말을 못 하는 존재가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반려동물이 있다면 한 번쯤 겪어 봤을 것이다. 밥을 안 먹고 구석에 웅크린 고양이를 보면서도 어디가 아픈지 물어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사는 가구는 2024년 말 591만 가구, 전체의 26.7%다(KB경영연구소, 데일리벳).

조사해 보니 지금 가장 믿을 만한 "동물 번역기"는 의외로 AI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점검표였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연구진은 2019년 고양이 얼굴에서 통증을 읽는 「고양이 찡그림 척도」를 내놨다(Scientific Reports). 귀가 납작하게 옆으로 돌았는지, 눈을 가늘게 찡그렸는지, 주둥이가 둥근지 타원형으로 굳었는지, 수염이 곧게 앞으로 쏠렸는지, 머리가 어깨선 아래로 처졌는지 다섯 가지를 0~2점으로 매긴다. 서로 다른 관찰자가 매긴 점수가 맞는 정도(ICC)가 0.89였고, 만점 대비 0.39를 넘으면 진통제가 필요하다는 기준까지 정했다. 위의 「말 잇는 판」에 넣은 것이 이 척도다.

AI는 이 점검표를 사진에서 자동으로 읽으려 한다. 고양이 29마리 얼굴 사진으로 학습한 모델은 통증 여부를 72% 넘게 맞혔고(Scientific Reports 2022), 말 7마리 영상으로는 88.3%였다(PLOS ONE 2021). 국내 에이아이포펫의 「티티케어」는 개 눈 사진 10만 장 넘게 학습해 눈 질환을 짚어 주는데, 회사는 정확도를 90%라고 밝혔다(데일리벳). 다만 어떤 사진으로 어떻게 잰 90%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양이 울음을 번역한다는 앱들이 내세우는 정확도도 대부분 업체가 스스로 잰 숫자다.

말하는 버튼도 있다. 바닥에 「밖」 「놀자」 「밥」 같은 낱말을 녹음한 버튼을 깔아 두고 개가 앞발로 누르게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연구진이 실험자의 눈과 귀를 가린 채 개 59마리에게 버튼 소리를 들려줬더니, 「밖」과 「놀자」에는 그에 맞게 반응했지만 「밥」에는 뚜렷한 반응이 없었다(PLOS ONE 2024). 연구진도 "우연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고 썼다. 주인이 무의식중에 신호를 주면 동물이 그걸 읽어 맞히는, 영리한 한스 효과를 막느라 그렇게까지 한 것이다.

야생동물 쪽에서 AI가 보여 준 것은 아직 '뜻'이 아니라 '짜임새'다. 향유고래 소리 8,719개를 분석한 연구는 리듬과 빠르기, 끝의 장식음이 조합돼 자주 쓰이는 꼴만 143가지가 넘는다고 보고했다(Nature Communications 2024). 저자들도 그 뜻은 "열린 질문"이라고 썼다. 구글이 2025년 4월 공개한 「돌핀젬마」도 돌고래의 다음 소리를 예측하는 모델이지 해독기가 아니다(구글). 동물과 대화하는 연구에 최대 1,000만 달러(지분 투자)를 걸어 둔 「콜러 두리틀 상」은 2025년 첫 연간상을 돌고래 휘파람 연구팀에 줬다. 서로 함께 쓰는 휘파람 가운데 한 종류는 경보, 다른 종류는 물음처럼 쓰일지 모른다는 결과였다(우즈홀해양연구소).

물을 못 받거나 줄기를 잘린 식물이 한 시간에 내는 초음파 딸깍 소리 횟수. 물 못 받은 토마토 35.4회, 줄기 자른 토마토 25.2회, 줄기 자른 담배 15.2회, 물 못 받은 담배 11회, 멀쩡한 식물은 1회 미만

식물은 더 놀랍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은 2023년, 물을 못 받은 토마토가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 50~58kHz 초음파를 한 시간에 서른다섯 번쯤 낸다고 보고했다(Cell). 멀쩡한 식물은 한 시간에 한 번도 안 냈다. 온실에서 이 소리 횟수만 세어 목마른 토마토를 84% 맞혔다. 다만 이건 식물이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다. 줄기 속 물관에서 기포가 터지는 물리 현상으로 보인다. 그래도 들을 수만 있다면 토마토가 "목말라"를 알리는 셈이다. 식물이 배우고 기억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재현 실험이 실패해 아직 논쟁 중이다(eLife 2020).

동물 번역기가 틀렸을 때 치르는 값도 생각해야 한다. 앱이 "괜찮아요"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병원 갈 때를 놓친다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지금은 말을 시키는 기술보다 아프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게 돕는 기술이 동물에게 더 쓸모 있다.

그의 사연을 생각해 보라

이번에 찾아본 기술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잘된 것들은 대개 말을 못 하는 사람을 고치려 들지 않고, 듣는 쪽을 고쳤다. 비전형 발화를 알아듣게 기계를 다시 가르쳤고, 가족의 목소리로 본인의 목소리를 지었다. 실패한 것들은 반대였다. 수어 장갑은 농인에게 장갑을 끼라고 했다.

노트 문장의 뒤 절반이 그래서 오래 남는다. 사연을 생각해 보라는 말은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먼저 물으라는 말이다. 시각장애인 열 명 가운데 아홉이 점자를 읽지 못한다면 점자 단말기보다 소리가 먼저일 수 있다. 수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는 자막보다 수어 통역이 먼저다. 기술은 그다음이다.

『오늘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노트 속 한 줄에서 출발해 오늘의 생각 한 장에 가닿는다.

재미있게 읽었다면 꼭 의견을 달아달라.

출처

  • 등록 장애인 수: 보건복지부 2025년 말 기준(2026-04-20 발표) — 보도. 언어장애 2023년 수치는 한국장애인개발원 웹진
  • 점자 변환 대조: liblouis 3.36, 한국어 표 ko-g2.ctb (LGPL). 대조에 쓴 낱말과 문장은 오시오 원고에서 뽑았다
  • 손짓 인식: Google MediaPipe Gesture Recognizer(기본 모델 일곱 손짓)
  • 고양이 찡그림 척도: Evangelista 외, Scientific Reports 9:19128 (2019)
  • 식물 초음파 수치: Khait 외, Cell 186:1328 (2023), 수치는 bioRxiv 판 본문 기준

이미지 출처

  • 표지: 국립국어원, 「Korean Braille」(2013), CC BY-SA 2.0 KR, 위키미디어 커먼즈
  • 루이 브라유: Henri Thiriat(1887), 퍼블릭 도메인
  • 호킹의 음성 합성기: Science Museum London / Science and Society Picture Library, CC BY-SA 2.0
  • 닷 점자 시계: Korea.net /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2017), CC BY-SA 2.0
  • 그래프 4장: 필자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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